[파이낸셜뉴스] 성추행 피해자 및 가해자의 직장 동료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토대로 외교관의 성추행 사실을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하급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소속직원에 대한 성적 비위행위는 일반 국민들의 검증과 비판의 대상인 만큼 확인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 사용됐다 하더라도 공익에 관한 것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40)의 상고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2012년부터 4년간 영국의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A씨는 2016년 12월 영국 현지에서 한국 인터넷 신문 사이트에 외교관 Y씨에 대해 비방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전직 대사관 직원과 성추행 피해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해당 외교관의 실명이 아닌 영어 이니셜을 사용해 “Y는 주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여직원과의 스캔들은 물론이고, 회식 후 여직원의 몸을 만지며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적시하지 않았고,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며 “글을 작성하게 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는 대사관 직원들의 입장이나 소문을 들은 것 외에 Y씨 측에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거나 재직한 기관 등에 사실확인을 위한 조치를 취한 사실이 없다“며 ”직원을 성추행하거나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 여부는 Y씨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1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은 다만 A씨가 올린 글 중 ‘2004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던 외교관 Y’ 부분은 무죄로 봤다. 당시 술집에서 여기자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Y씨가 만취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시인했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가 존재하고, 이 사건으로 Y씨가 품위손상을 이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점 등에 비춰 A씨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심은 A씨의 글 중 더 많은 부분이 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회식 후 여직원 몸을 만지며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부분에 대해 2심은 성추행 피해 주장 여성이 법원에 제출한 피해사실 인증진술서상 추행 일시와 경위, 내용이 상세히 기재돼 있고, 추행 내용이 Y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세지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로 봤다.
2심 재판부는 “대사관 소속 여직원에 대한 추행 여부는 공적 관심에 해당할 여지가 큰 영역이었다”며 “그 내용 및 표현 방식에 다소의 과장이나 과격한 부분이 존재하더라도 피고인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은 또 ‘여직원과의 스캔들’ 부분도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비방의 목적이 존재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Y씨가 영국대사관 재직 당시 여직원과 불륜 관계에 관한 소문이 직장, 교민사회에 퍼져있었고, 징계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Y씨는 국정원 측으로부터 감찰을 받기도 했다. 2심은 다만 A씨가 작성한 ‘수많은 여성을 희롱했다’ 부분은 근거가 없다고 보고 이 부분만 유죄로 인정, 벌금 50만원으로 감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이 유죄로 인정한 부분도 무죄로 봤다.
대법원은 “Y씨는 외교부 소속 고위 공무원으로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공무원의 소속직원에 대한 성적 비위행위는 일반 국민들의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게시글에 적시된 사실은 공익에 관한 것으로 비방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은 개인적 감정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등으로 Y씨를 비방할만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며 “이 사건 게시글 표현 중 ‘Y씨가 주영대사관 공사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여성들을 희롱했다’는 부분은 Y씨의 성적 비위행위에 관한 표현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된 표현이 사용됐다고 볼 수 있고, 전체 내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은데도 원심이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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