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해외 100년 기업 - 독일의 장수기업들 <끝>
3대째 물려받은 놀테, 작위 받은 포슁거
독일 강소기업의 성공비결은 ‘가족경영’
업무능력·타회사 경험 쌓아야 후계 인정
정부도 지분관리회사 통해 가업승계 지원
무한경쟁의 시대에도 100년 이상 장수하는 해외기업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년 이상 된 해외 장수기업이 7000개가 넘는다. 여기에는 상당수의 독일 기업이 포함됐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주요 장수기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가족경영이다. 국내에서 가족경영은 '재벌' 등으로 불리며 부정적인 이미지이지만 확고한 원칙을 갖고 이를 어기지 않는 독일 가족경영기업은 독일 경제를 이끌고 있다.
■독일 장수기업 동력은 가족경영
가족경영은 독일 경제를 대표하는 경영구조다. '히든챔피언(강소기업)' 국가로 불리는 독일에서는 가족경영기업을 쉽게 비판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업들도 독일의 대표 가족경영기업이다. 세계적인 자동차부품회사 보쉬를 비롯해 BMW, 밀레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 주방기구 강자인 놀테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놀테도 가족경영기업이다. 이 기업의 기원은 지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놀테가(家) 3세의 할아버지인 조지 놀테가 가구 사업을 시작했다. 조지 놀테의 아들 콘라트 놀테가 가업을 받아 지난 1958년 놀테를 설립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설립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현재 약 1100명에 달한다.
독일 놀테의 최고경영자(CEO) 에크워드 웨핑은 "가족경영은 우리 회사의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유리 제품으로 유명한 독일 기업 포슁거도 가족경영기업이다. 지난 1568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산림지대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지난 4세기 동안 꾸준히 성장했다. 바이에른의 귀족 가문 포슁거가(家)는 지난 1790년 남작 작위를 받기도 했다.
독일 프리미엄 가전기업인 밀레그룹도 독일을 대표하는 또 다른 가족경영기업이다. 밀레는 지난 1899년 친칸 가문과 밀레 가문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친칸 가문과 밀레 가문이 번갈아가며 기술부문과 경영부문 대표를 맡아가며 가족경영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확실한 원칙 고수
독일 유력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독일의 장수기업들이 몇백년째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시대변화에 대처하고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나름의 확실한 원칙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폰 포슁거는 훈련에 올인하는 원칙이 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가문 밖에서 경험과 기회를 갖는 것도 허용한다. 경험을 쌓은 뒤 일정 자격을 갖춰 돌아오는 것에도 제한이 없다.
밀레 또한 독특한 후계자 승계 방식으로 유명하다. 친칸과 밀레 양 가문에서 수십명이 경합을 거쳐 최종 후보에 선정되면 4년 이상 다른 회사에서 경영실무를 쌓아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친 후 업무능력 시험과 최종면접을 거쳐 후계자로 선정된다.
르틴 반스레벤 독일연방상공회의소 상근대표는 "독일의 가족기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성장해 규모가 커져도 원칙이 있다"고 소개했다. 바로 '책임의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경영자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단기적 수치나 실적보다 장기적으로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심하게 된다.
■지분관리회사로 기업승계
물론 독일에서 가족경영기업 등의 장수기업이 나오는 것은 법적인 뒷받침도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독일의 대표기업인 BMW를 비롯해 오토그룹, 헨켈은 창업주 가문의 가족구성원과 기업이 다양한 형태의 지분관리회사를 설립해 기업승계를 이어왔다. 독일의 지분관리회사는 기업승계와 전략적 지분투자 등 기업지분 투자와 관련한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전략적 투자지주회사를 뜻한다.
BMW의 경우 지분을 상속받은 3명의 상속자가 각각 BMW 지분을 관리할 회사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원활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
대표적으로 미망인 요한나는 보유한 BMW 지분 16.7%를 통해 '요한나 크반트 지분관리유한합자회사'를 설립했다.
또 독일 최초로 카탈로그 통신판매 사업을 한 오토 그룹은 주력회사인 오토를 유한회사에서 유한합자회사로 전환했다. 유한책임사원으로 '오토 지분관리주식회사', 무한책임사원으로 '오토 경영관리유한회사'를 둬 각각 수익분배권과 경영통제권을 분리하는 등 기업승계를 실행했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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