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 강화 위해 떨어졌다 다시 붙은 '재난조직'
복지부에 남은 의료체계..비효율 발생 가능성↑
원자력위원회처럼 질병관리청장 권한 높여야
[파이낸셜뉴스]
지난 3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해 정은경 본보장과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뉴스1
소방방재청→국민안전처→행정안전부(재난안전관리본부)
국내 재난 담당 정부조직의 변천사입니다. 대형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전문성 강화 요구가 커져 '청·처'로 독립됐지만 결국 행안부 차관 조직(재난안전관리본부)으로 흡수됐습니다.
효율적인 재난관리·대응을 위해 타 부처, 지자체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교훈을 깨달아서입니다. 행안부는 조직권을 쥐고 있는 터라 타 부처 협조를 얻어내기에 용이하고, 지자체 총괄이어서 지역 재난대응역량 강화에 제격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이같은 재난조직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본 재난전문가들은 이번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감염병 확산되면 의료체계 마비 불가피
재난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돼 독립하면 보건복지부 관할의 의료체계와 엇박자를 낼까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4일 육군 제2작전사 예하 1117공병단 장병들이 국군대구병원에서 음압병상 확충공사를 위해 자재를 운반하고 있다. 육군 제공. 뉴스1
2일 취재에 응한 재난전문가들은 질본의 청 승격을 통한 감염병 전문성 강화에는 찬성하지만 재난 대응의 관점에서 구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지붕 아래 있던 '감염병'과 '의료체계'가 두 집 살림으로 나눠지면 '비효율'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감염병이 확산되면 의료체계와 직접 연결돼 격리 치료를 해야 한다"며 "감염병이 확산되면 의료체계 마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의료체계는 보건복지부에 놔둔 채 (질본이) 외청으로 나가면, 질병관리청은 병원 관리를 못한다"며 "협조관계에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대구·경북지역 코로나19 확산 때 경증환자까지 병원에서 치료 받는 탓에 다른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고열에 시달리던 18살 고등학생이 의심증상이 없단 이유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결국 생활치료센터를 만들어 경증환자를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도 경증환자 비율이 80%에 달했기에 가능한 처방이었죠. 익명을 원한 한 재난전문가는 "앞으로 중증환자 비율이 훨씬 높은 감염병이 안 오리란 법이 없다"며 "재난관리청이 제대로 병상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제력 없는 신혼부부가 독립하는 꼴"
정부 부처 분위기 상 차관급 청장의 말빨(?)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은 "타 기관과 연계된 활동을 펼칠 때 질병관리청장이 소집하는 것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소집하는 건 큰 차이가 날 것"이라며 "소방방재청 때도 행안부 장관을 모셔오는 일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정부 재난관리 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한 전문가는 질본의 외청 독립을 '경제력 없는 신혼부부가 독립하는 꼴'이라는 다소 강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는 "재난관리는 전체 부처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소방방재청 당시, 청이라는 이유로 타 부처 협조를 얻어내기 매우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청·처로 독립했던 재난 조직이 행안부 차관 조직으로 다시 흡수된 배경이기도합니다.
2014년 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안전처가 만들어졌다. 행정자치부 방재국이 2004년 소방방재청으로 승격된 지 10년만이었다. 그러나 타 부처 협조, 지자체 연계 등을 이유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행정안전부 차관 조직으로 흡수됐다. 뉴스1.
미국 CDC장, 대통령도 통제
전문가들은 조직 확대보다는 질병관리청장의 권한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찬오 교수는 "보건부를 만들어서 감염병과 의료체계를 한번에 관리하면 가장 효율적이겠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라며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언급했습니다. 김 교수는 "미국은 감염병에 관해선 모든 정부 기관이 보건부 산하 외청인 CDC 센터장의 명령을 듣는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도 "조직을 늘리지 않더라도 청장의 책임과 권한을 막강하게 주면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작은 조직에도 큰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조직확대가 능사가 아니라는 관점입니다.
그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예로 들었습니다. 중대 재난이 발생하면 범 부처 재난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꾸려집니다. 보통 행안부 장관이 중대본부장을 맡습니다.
다만 방사능 재난이 발생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중대본부장이 됩니다. 전문성을 고려한 판단입니다.
이동규 교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도 차관급이지만 방사능 재난 시 중대본부장을 맡는다"며 "감염병의 경우 중대본부장을 질병관리청장이 맡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