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명이 죽고, 937명이 다치고, 30명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57분, 서초구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붕괴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다. 안전불감증, 부실공사, 건설비리 등 우리 사회 민낯을 드러냈던 참사다. 그 후 25년이 흘렀다. 매년 6월 29일이 되면 삼풍백화점 희생자 유가족들은 한 장소에 모인다. 먼저 떠난 가족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들이 찾는 장소는 사고 현장이 아니다.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4.3㎞나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이다. 공원 끝자락에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왜 이곳에 위령탑이 세워졌을까.
당시 유족들은 사고 현장에 위령탑을 건립해 달라고 수없이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서울시는 "돈이 없다" "주변 땅값, 아파트 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유족들의 요청을 묵살했다.
KBS 다큐인사이트 '시대유감, 三豊(삼풍)'에 출연한 유가족은 "다 돈과 관련된 이유였다"며 "돈을 추구하는 탐욕 때문에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었는데, 앞으로 이런 사고를 막을 의지가 있나(의문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502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사고 현장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붕괴사고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훌쩍 흘러 그때와 꼭 닮은 일이 일어났다. 2017년 겨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죽고, 40명이 다쳤다.
그런데 이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추모비도 사고 현장에서 600m가량 떨어진, 인근 야산과 인접한 공원 한구석에 마련됐다. 이유는 삼풍백화점 위령탑 때와 다르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는 시민문화타워가 건립된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생활SOC 사업에 선정돼 국비 21억여원이 투입되는데도, 제천 화재 참사를 위한 공간 한 조각도 허락되지 않았다. 작은 현판조차도.
지난 4월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에서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대책에도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망각' 때문이 아닐까. 마음이 편치 않더라도 유사한 참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곁에 두고 되새기는 대신 공원 한편 구석에 숨겨둔 탓이 아닐는지.
eco@fnnews.com 안태호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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