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향한 산유국 이란의 언사가 매우 거칠다.
한국과 미국을 '종속관계'에 비유하는가 하면 한국 두 곳의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동결돼 있는 석유대금을 주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올 초 호르무즈해협 파병 직전엔 '단교'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그런 이란이 일본에 대해선 좀 태도가 다르다. 일본 역시 미국의 대이란제재 참여국이다. 일본 자위대의 호르무즈해협 독자파병 결정 당시엔 "이해한다"고 했다. 똑같이 독자파병을 택한 한국에 대해선 "유감이다"라고 반발했다.
일본엔 이란을 상대하는 몇 가지 필살기가 있다. 엔화 파워와 '오모테나시'라고 하는 지극정성 외교 두 가지다. 외교현장에선 이 두 가지가 잘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미·영·러 등이 이란 석유대금 송금제재를 일시 완화한 적이 있다. 2014년 2월의 일이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1등으로 이란에 송금을 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액수는 약 5억5000만달러(약 6600억원)였다. 게다가 2010년께부터 미국의 달러거래 규제를 피해 3대 결제통화인 엔화로 대금결제를 전환했던 터라 국제적으로 태환성이 없는 원화계좌로 마냥 쌓아둘 수밖에 없는 한국과는 상황이 달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이란 중재외교 실패로 일컬어지는 지난해 6월 이란 방문 후 그해 12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일본을 답방했다. 당시 로하니 대통령은 일본의 호르무즈해협 독자파병, 석유대금 결제 등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설득과 어떤 복안을 소상히 들었던 모양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귀국 후 석유대금 문제에 대해 일본이 제재를 피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파병에 대해서도 조용하다. 중재외교는 실패했으나 대이란 외교 면에선 나름의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닛쇼마루호 사건'으로 양국 관계의 끈끈함을 설명하기도 한다. 1953년 이데미쓰라는 석유회사의 창업자인 이데미쓰 사조가 영국의 대이란 봉쇄선을 뚫고, 격침 우려에도 닛쇼마루호라는 유조선을 이란에 보내 이란과 거래를 튼 사건을 말한다. 이란은 사실 일본의 주요 원유수입국도 아니다. 이란산 원유는 전체 수입량의 5%(6위)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상당한 공이 들어간 것이다. '가성비 외교'로는 좀 손해다.
생각보다 국제사회엔 일본의 '친구'들이 꽤 많다. 인도, 베트남, 호주, 미얀마 등이 일본의 숨겨진 우방들이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방일했을 때는 아베 총리가 별장으로 초대해 극진히 환대했다. 베트남에 대한 일본의 공적원조(ODA)는 부동의 1위다. 액수도 한국(2·3위 수준)의 약 10배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하노이 롯데호텔 근처 일본대사관 앞엔 뙤약볕 아래 일본비자 신청 줄이 장사진을 이뤘다.
마치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 비자 신청 줄과 흡사하다. 한·일 간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 당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한국이 역전승을 거두고도, 제네바 현지 상당수 회원국들의 분위기는 되레 일본에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역대 정권마다 양념처럼 빼놓지 않고 있는 '한국외교 다변화', 공허한 목표가 아니었는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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