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기자수첩] 금융당국 영(令)은 언제 서나

[기자수첩] 금융당국 영(令)은 언제 서나
[파이낸셜뉴스] "금감원의 권위는 이제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자조 섞인 말이다. 엄살은 아닌 듯하다. 최근 일련의 사태 속에서 보이는 금융당국의 모습은 분명 과거의 그 모습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영이 제대로 서지 않는 모습이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로 라임자산운용 배상 문제를 들 수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판매사들에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투자금 100%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은행이 중심이 된 판매사들은 줄줄이 전액 배상 판단을 유보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바로 직전 키코 배상 문제도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의 금감원 배상 결정 거부로 일단 결론이 났다.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이 먼저 거부 입장을 밝혔고, 다른 은행들도 최근 같은 입장을 전했다. 은행권에선 "(금감원이) 거부될 걸 알면서 보여주기 식으로 그랬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인한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 중징계 문제는 금융당국 권위 추락의 정점을 찍은 사례였다. 올해 초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DLF 불완전판매 등을 이유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두 사람은 앞길이 험난해질 위기에 처했지만,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이후 법원에서 인용을 득한 뒤 손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고, 함 부회장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결국 금융당국의 징계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금융지주사 CEO는 예정된 행보를 무난히 이어간 셈이다.

물론 일련의 사태를 유발한 일차적 책임은 금융사에 있지만, 후속 조치가 원만히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 학습경험이 생긴 만큼, 앞으로도 금융당국의 결정에 금융사들이 불복하는 모습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수록 금융당국의 권위는 계속 추락할 뿐이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강압적 방식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처럼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부작용만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그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금융권에서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면 사달이 나게 돼 있다.
결국 당근과 채찍을 유연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안별 강온책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것이 금융당국 및 금융사, 금융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길이란 생각이 든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