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직장 회식 후 모텔에 가고 싶다며 여직원의 손목을 잡아 끈 행위도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 이미 성적 동기가 내포돼 있어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보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박씨는 2017년 7월 서울 마곡동 일대에서 회사 회식을 마친 후 같은 회사 경리 직원으로 신입사원인 피해자 A씨와 단둘이 남게 되자 A씨에게 모텔에 같이 가자고 했다. A씨가 거절하자 박씨는 계속 “모텔에 함께 가고 싶다, 모텔에 같이 안 갈 이유가 뭐가 있냐”며 강제로 A씨의 손목을 잡아끌어 추행한 혐의(1차 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1차 범행 6일 뒤 사무실에서 A씨와 둘만 있게 된 틈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A씨의 몸에 밀착시킨 후 A씨 오른쪽 얼굴 옆에서 “떨리냐. 왜 입술을 자꾸 핥고 깨무느냐” 등의 말을 속삭이며 컴퓨터 마우스를 쥐고 있던 A씨의 오른쪽 손등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리는 방법으로 손을 만져 추행한 혐의(2차 범행)도 받았다.
검찰은 박씨에게 그해 10월 회식이 끝날 무렵 A씨가 앉아 있던 의자 뒤로 다가와 몸을 밀착시키며 “2차 가요”라며 A씨의 어깨와 허리 부위를 계속 손으로 만지며 추행한 혐의(3차 범행)도 적용했다.
1심은 A씨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하고 있고, 그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며 박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반면 2심은 1차범행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박씨가 피해자에게 모텔에 가자면서 손목을 잡아끌었다고 해도 이를 성희롱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강제추행죄에서의 ‘추행’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2심은 “피고인이 접촉한 피해자의 신체부위는 손목으로서 그 자체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손목을 잡아끈 것에 그쳤을 뿐 피해자를 쓰다듬거나 피해자를 안으려고 하는 등 성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다른 행동에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2심은 3차범행에 대해서도 피해자 진술 신빙성이 없다며 벌금 300만원으로 감형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접촉한 피해자의 특정 신체부위만을 기준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지 여부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피고인이 모텔에 가자면서 피해자의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는 이미 성적인 동기가 내포돼 있어 추행의 고의가 인정되고, 나아가 피해자를 쓰다듬거나 피해자를 안으려고 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만 성적으로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이어 “피고인이 직장 상사인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하고, 일반인에게도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추행행위”라고 덧붙였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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