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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애도땐 어떤 생존도 존중돼야"…박원순 사망 한달

"어떤 죽음 애도땐 어떤 생존도 존중돼야"…박원순 사망 한달
서울시청 신청사 6층 모습. 2020.7.1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어떤 죽음이 애도돼야 한다면, 어떤 생존도 존중돼야 한다. 사건의 실체 규명은 필요하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의 인터뷰 중)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지 하루 만에 실종,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 발견된 지 한 달이 흘렀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성추행 혐의에 대한 경찰의 직접수사가 어려워진 가운데, 박 전 시장의 의혹을 두고 공방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8일 박 전 시장의 전직 비서 A씨의 변호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에 따르면 A씨는 박 전 시장의 비서로 일하는 4년, 그리고 다른 부서로 발령 난 후에도 지속적인 성추행을 입었다.

이에 A씨 측은 박 전 시장의 장례절차가 끝난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자체 조사단을 통해 진상조사를 펼친다는 계획이었지만 A씨 측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에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를 받아들인 인권위는 지난 5일 박 전 시장 사건 관련 직권조사단을 구성하고 연내 마무리를 목표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인권위가 이번처럼 특정 사안에 대한 직권조사단을 구성한 것은 처음으로, 인권위가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인권위는 강제수사권이 없어 주요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큰 성과 없이 조사가 표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씨를 향한 '2차 가해'가 이어진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 박 전 시장에 대한 정치권의 조문과 애도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풀이됐다. 동시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A씨의 신상정보를 캐내려 하는 등의 2차 가해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또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의 비밀번호가 A씨 측의 제보로 해제됐다는 점을 두고도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2차 가해가 유발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재련 변호사도 무고 혐의로 피소됐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저에 대해서는 범죄행위이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할 2차 가해"라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정부가 침묵하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는 "박 전 시장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가 맞느냐", "문재인 대통령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공방을 벌였다.

여론도 나뉘긴 마찬가지다. 먼저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오는 9일 마감될 예정이다.

일찌감치 청원 답변요건인 20만명을 넘기고 59만 5000여명이 동의를 표했기 때문에 청와대의 답변에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그간 청와대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진상규명으로 사실관계가 특정되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만 했었다.

일각에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보도를 마치 결론이 난 것처럼 방송했다며 이소정 KBS 뉴스9 앵커의 프로그램 하차를 요구하거나, A씨가 제출한 성추행 증거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 청원도 올라온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이 중단되는 등 경찰의 강제수사에 차질이 빚어지자 시민들이 직접 나서 눈길을 끈다. 신지예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민감사청구 요청을 위한 청구인을 직접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같은 사실을 알린 뒤 트위터에 "유가족의 반대에 법원이 포렌식 절차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지만 박 전 시장은 해당 폰으로 업무를 보고, 기기값과 요금은 9년간 서울시민 세금으로 처리됐다고 한다.
유가족의 마음은 백번 이해되지만 서울시 세금이 들어간 핸드폰이 박원순 시장 개인의 것이냐"고 적었다.

경찰은 A씨와 서울시 측이 서울시의 방임 의혹과 관련해 엇갈린 주장을 펼치는 것과 관련, 대질신문이나 거짓말탐지기까지 수사에 활용해 최대한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도 '성차별·성희롱 근절 대책특별위원회'를 통해 9월까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