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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이자제한법

삼국시대 '장리(長利)'는 곡식을 춘궁기에 빌려주고 추수철에 받아낸다. 화폐 대신 곡식을 꿔주고 받은 대부업의 시초인 셈이다. 당시 장리 금리는 지금으로 따지면 연 66%쯤 된다. 고려 경종(980년) 땐 이를 절반인 33%로 제한했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자 영조땐 연 20%로 묶었다. 해방 이후엔 1962년 이자제한법 제정으로 법적 틀을 갖췄다. 현행법상 법정 최고금리는 연 24%다. 2002년 66%에서 2007년 49%, 2014년 34.9%, 2017년 27.9%로 내려왔다.

최근 여당에서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10%까지 낮추는 법안을 잇따라 내놨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외계층을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여권 내 잠룡 이재명 경기지사도 연 10% 제한에 적극 찬성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의원 176명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법 개정을 요청했다. 실물경제 위기가 저신용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숨통을 옥죄니 높은 이자를 내리라는 주장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금리도 시장 가격이다. 은행과 견줘 대부업계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건 빌려줄 돈을 끌어올 때 내는 조달금리가 높아서다. 대부업체는 혹시라도 떼일 위험에 대비해 높은 이자를 많은 대출자에게서 거둬들이는 구조다. 고객 상당수는 아예 담보가 없거나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경우가 많다. 환자로 치면 고위험군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금리를 무조건 내리라고 하면 역마진을 우려한 상당수 대부업체는 대출을 중단하거나 신용심사를 더 까다롭게 할 것이다.

실제 2018년 최고이자율이 28%에서 24%로 낮춰진 후 일부 대부업체가 영업을 중단했다. 남은 업체들도 신규 대출 업무는 거의 안한다. 대부업 시장이 쪼그라들면 저신용층은 사채 등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소외계층에 돌아간다.
사채금리는 연 100% 이상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무서운 지하시장이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되레 서민을 궁지로 내모는 우를 범할 수 있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