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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삶의 터전 버릴 수 없소" 구례 수해 복구현장 '구슬땀'

섬진강 지류 범람에 구례읍 봉동·봉서 일대 초토화 양정마을, 구조된 소 축사로 돌아와 개체·건강 점검 봉동리 하우스 농가도 복구 시작됐지만 '일손 부족' 구례 5일장 각 기관 복구지원 '활기'…정상화는 요원

[르포] "삶의 터전 버릴 수 없소" 구례 수해 복구현장 '구슬땀'
[구례=뉴시스] 변재훈 기자 = 12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수해현장에서 침수·붕괴된 주택 철거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380㎜의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 마을 일대가 잠겼으며 최근에서야 복구 작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2020.08.12.wisdom21@newsis.com
[구례=뉴시스] 변재훈 기자 =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어 막막하지만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는 없잖소?"

12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서리 양정마을 일대는 곳곳에 흙탕물이 고여있었고 주저앉거나 쓰러진 주택·축사 잔해가 곳곳에 널부러져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380㎜의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되면서 범람한 황톳물이 마을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전체 115가구 대부분이 1~2층 주택 옥상까지 가득 들어찬 강물에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를 챙겨 대피할 틈조차 없었다. 축산 농가만 44가구에 이르는 이 마을에서는 사육하던 한우 1527마리 중 1000여 마리가 폐사하거나 실종됐다. 65%가 넘는 피해다.

마을 곳곳에서는 소 사체가 방치돼 악취가 났다.

다행히 일부 소들은 구사일생으로 급류에 떠밀려가다가 주택·축사 지붕 위로 대피,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날도 축사 밖으로 나와 살아남은 소들이 트럭에 실려와 축사로 향했고, 일부 소들은 주인을 찾아 옮겨졌다. 논 도랑을 따라 임야에 임시로 매어놨던 소를 되찾아 오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

수해 뒤 발생할 수 있는 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해 가축 방역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소독 작업을 벌였다.

인근 지역 축산농협 직원들은 소 등록 명부와 일련번호 등을 대조하며 살아남은 소들의 개체 수를 헤아리고 건강 상태를 살폈다.

[르포] "삶의 터전 버릴 수 없소" 구례 수해 복구현장 '구슬땀'
[구례=뉴시스] 변재훈 기자 = 12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수해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가 주인과 함께 축사로 향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380㎜의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 이 마을 일대가 모두 잠겼다가 최근 긴급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020.08.12.wisdom21@newsis.com

대형굴삭기는 주민 안모(70·여)씨의 주택을 철거하고 있었다. 안씨의 주택은 폭격을 맞은 듯 외벽부터 지붕까지 온전한 곳이 없었다.

안씨는 "집이 폭삭 주저 앉았는데 복구가 무슨 소용이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기르던 소 16마리 중 3마리만 살아왔다. 가진 재산은 다 잃은 것 같다"며 "폭우를 내리게 한 하늘도 야속하고 수해 예방을 소홀히 한 정부도 원망스럽다"고 전했다.

양정마을 전용주 이장은 "주민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며 "정부가 조속히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하고 피해를 입은 영농·축산 농가에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근 공터에 매여있던 소는 굴삭기가 내는 굉음에 놀라 연신 울부짖으며 애처롭게 앉아 있었다. 한 주민이 가져온 여물 한 더미를 건네고 나서야 겨우 진정하는 모양새였다.

외벽이 반쯤 깨진 한 주택에서는 가재도구를 꺼내는 손길이 바빴다. 조리도구·식기·외투 등이 진흙 범벅이 돼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하나라도 더 건져보고자 애썼다.

가재도구를 옮기고 세척하는 일에는 구례·순천 지역 공무원들이 손을 보탰다. 육군 31사단 장병 2000여 명도 축사 내 폐기물 잔해를 치우고 손으로 날랐다.

일손을 돕던 순천시청 정종선 녹색도로팀장은 "뉴스로 봤을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구례 주민들이 하루빨리 삶의 터전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대민 지원에 나선 육군 31사단 정수한 대위는 "중장비가 진입하지 못하는 축사·과수원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복구 작업을 벌였다"며 "망연자실한 주민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주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르포] "삶의 터전 버릴 수 없소" 구례 수해 복구현장 '구슬땀'
[구례=뉴시스] 변재훈 기자 = 12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오이 재배 하우스농장에서 농민들이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380㎜의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되면서 막대한 침수 피해가 나, 최근에서야 복구 작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2020.08.12.wisdom21@newsis.com

범람한 서시천과 접하고 있는 인근 봉동리 오이 재배 하우스의 피해 상황도 심각했다. 한 하우스에는 1㎞ 가량 떨어진 식당 주차장 내 콘테이너 가건물이 덮쳐 반쯤 내려앉아 범람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하우스 안은 온통 흙빛으로 뒤덮여 어떤 작물이 자라고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출하용 포장상자는 흙탕물에 젖어 축 늘어진 폐기물이 됐다.

농민 차성도(61)씨는 "오이하우스 5개동이 모두 파손돼 올해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 지인들이 트랙터·트럭 등을 가져와 복구 일손을 거들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행정당국이 중장비를 하루 빨리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서시천 교량 주변 도로에서는 인근 상가에서 나온 폐가전제품·건축자재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굴삭기·덤프트럭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르포] "삶의 터전 버릴 수 없소" 구례 수해 복구현장 '구슬땀'
[구례=뉴시스] 변재훈 기자 = 12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5일시장에서 상인들과 각계 기관·봉사단체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380㎜의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되면서 시장 일대가 물에 잠겼으며, 최근에서야 복구 작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2020.08.12.wisdom21@newsis.com
개장한 지 61년을 맞은 구례 5일시장도 섬진강 범람에 직격탄을 맞아 상가 147채 모두 침수 피해를 입었다.

시장은 장날(13일)을 하루 앞둔 이날 인근 지자체·소방서·대한적십자사 등 봉사단체·가전기업 등 복구 지원에 나선 인력들로 붐볐다.

큰 골목이면 어김없이 수해 잔해가 곳곳에 쌓였다. 골목 곳곳에서는 물에 젖고 흙이 묻은 상품·식기류를 씻어내고 말리는 작업이 분주했다. 소방관들은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와 고압분사호스로 길가의 흙탕물을 씻어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배모(64·여)씨는 "일평생 이 곳에 살면서 이런 물난리는 처음 봤다. 전력 복구부터 식기 세척, 벽지·장판 교체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한 달은 가게 문을 열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5일시장 상인회장 이을재(71)씨는 "하루종일 굴삭기로 잔해를 퍼내고 덤프트럭으로 실어보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곳곳에서 온정의 손길을 전해주고 있지만, 시장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폭우로 구례 지역이 입은 재산피해 규모는 1138억 원으로 잠정 추산됐다.


구례군은 호우 피해 상황 파악과 복구 작업에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르포] "삶의 터전 버릴 수 없소" 구례 수해 복구현장 '구슬땀'
[구례=뉴시스] 변재훈 기자 = 12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5일시장에서 상인들과 각계 기관·봉사단체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380㎜의 폭우로 섬진강 지류 서시천 제방이 붕괴되면서 시장 일대가 물에 잠겼으며, 최근에서야 복구 작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2020.08.12.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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