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에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자원한 주민이 잠재적인 백신 후보 물질을 접종받고 있다.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세계 주요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들이 백신 완성을 재촉하는 각국 정부의 성화에 떠밀리는 가운데 안전장치 마련에 나섰다. 개발사들은 급하게 만든 백신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민사 소송을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면책권을 달라는 입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백신 개발사 로비단체인 백신유럽의 내부 회람용 문서를 입수해 개발사들이 EU 정부를 상대로 면책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신유럽은 유럽의약품산업협회(EFPIA) 산하 업계 단체로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프랑스 사노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활동하는 미 제약사 화이자와 노바벡스 등 주요 다국적 제약사들이 소속되어 있다. 백신유럽은 문서에서 코로나19 백신이 “현재 개발 속도와 규모를 고려할 때 일반적인 개발에서 광대한 임상시험과 제약사들의 제조 경험에서 나올 수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기초 증명 자료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백신유럽은 이러한 상황이 “불가피한 위험”을 초래한다며 “포괄적인 비과실 및 비적대적 보상 체계와 민사책임 면제를 추구하고 있다”고 적었다. 백신유럽은 백신을 접종받은 일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며 “비록 해당 문제가 백신과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접종 범위와 코로나19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감안하면 수많은 피해 보상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면서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코로나19 백신들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미국은 이미 이달까지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사노피 등 주요 개발사들과 협상을 통해 7억회분의 코로나19 백신들을 미리 구입했고 EU 역시 비슷한 양의 백신을 사들였다. 일본 또한 화이자로부터 1억2000만회분의 백신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협상중인 물량까지 따지면 미국과 EU, 영국, 일본이 선점한 백신 물량만 약 30억회분에 달한다.
러시아의 경우 이달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일반적인 절차인 3차 임상시험을 건너뛰고 접종하기 시작했다. 미 언론들은 이달 관계자를 인용해 재선을 앞두고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직 미국 내 3차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오는 9월에 긴급승인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제약사들은 정부의 재촉이 거세질수록 난감한 상황이다. 미 제약사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가격을 2회 접종 기준 50~60달러(약 6만~7만원)로 잡았다고 알려졌다. 관계자에 의하면 아스트라제네카는 EU에 보낼 백신 납품 가격을 1회당 20유로(약 2만8000원)로 설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급히 만든 약품을 높은 마진도 남기지 못하고 대량 판매해 막대한 소송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백신유럽 문건에 대한 FT의 질의에 대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EU 내 제품책임지침에 위배될 경우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제약사들의 “특정 책임”에 대해서는 앞서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면책을 허용하는 조항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아스트라제네카는 EU와 백신 계약을 맺으면서 부분적인 면책 약속을 받아냈다고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유럽의약청(EMA)의 야니스 나트시스 환자대표위원은 면책 약속이 “위험한 전례”를 남긴다며 “이러한 조치는 백신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미국에서 시행한 조사 결과 코로나19 백신을 맞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전체 41%에 불과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절반이 백신의 안정성을 의심했고 우크라이나의 경우 백신이 안전하다고 보는 응답자는 29%에 그쳤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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