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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One]"예술이 밥 안 먹여준다고? 그럼 직접 밥을 짓지 뭐"

[통신One]"예술이 밥 안 먹여준다고? 그럼 직접 밥을 짓지 뭐"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민영 코리안푸드랩'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최민영(26) 셰프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통신One]"예술이 밥 안 먹여준다고? 그럼 직접 밥을 짓지 뭐"
최 셰프가 개발한 한식 메뉴들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통신One]"예술이 밥 안 먹여준다고? 그럼 직접 밥을 짓지 뭐"
'민영 코리안푸드랩' 내부 모습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내가 하는 예술이 당장 나를 밥 먹여살리지 못한다면, 내가 밥을 지어 다른 사람까지 함께 먹여 살려보면 어떨까?"

다소 엉뚱한 생각 하나로 해외에서 퓨전 한식당을 차려 성공한 한국인 셰프가 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사는 최민영(26) 셰프는 자신의 이름을 딴 한식 레스토랑 '민영 코리안푸드랩'을 열고 승승장구 중이다.

전세계 디자인학교 중에 최고로 꼽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사실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같은 동기생들과 함께 '졸업하면 뭐하지'를 고민했고 이미 졸업한 선배들이 얼마나 혹독한 사회의 벽에 막혀 방황하는지를 확인했다.

특히나 거금의 유학 비용을 내고도 네덜란드나 다른 유럽국가에 직장을 잡지 못하면 고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많은 유학생들처럼 좌절을 경험했다.

"그때는 두려웠죠. 네덜란드에서 학교를 졸업하면 1년간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거주 비자를 주지만 사실 취업시장에서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국적자가 우선 순위에 올라가기 때문에 현실의 벽을 체감했습니다."

사실 최 셰프의 현재 직장이자 사업이 된 '민영 코리안푸드랩'은 그가 에인트호번 디자인스쿨 3학년 때 열게 된 레스토랑이 시작이었다.

당시 최 셰프는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기반으로 한 식당 시범사업(experimental dining event)을 기획했다. 음식을 매개체로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깝게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후 정식 레스토랑도 열게 되면서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현재 최 셰프의 '민영 코리안푸드랩'은 전통적인 한식에 실험적인 요소를 가미한 메뉴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의 유명 셰프들과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21일엔 한식과 레바논 음식을 접목하여 기금 마련 이벤트를 마련했다.

최 셰프는 레바논 음식의 일종인 키베(미트볼)에 김치로 맛을 낸 속재료를 같이 요리해서 애피타이저로 선보였고, 메인 요리로는 한국식 간장양념으로 숙성하고 레바논 향신료를 더한 치킨 바비큐를 올렸다. 부속 메뉴(사이드 디시)로는 레바논에서 자주 먹는 타히니 소스와 채소 요리 등을 곁들였다.

"우선 레바논 친구에게 레바논 가정식(home meal)에 대해 많이 물어 보았고, 친구가 몇 가지를 만들어와서 함께 시식을 해봤습니다. 이후 제가 한식에 주로 쓰이는 양념장을 만들어서 어느 재료와 어떤 레바논 향신료와 배합하면 좋을지 연구해 메뉴 선정을 마쳤습니다."

최 셰프가 한식과 레바논 음식을 접목하게 된 계기는 이달 초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였다. 레바논 출신 동창생들과 이재민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 레바논 적십자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제가 해외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보니 그 절절한 마음이 이해가 되더군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서 기금 마련을 위한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최 셰프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한 후에야 예술 속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 중 하나인 음식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여성으로서 한식당을 차리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실 말이 거창하고,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당시에 제가 자본금도 없었고, 딱히 요리 실력도 없었던 터라 현실이랑 이상 사이에서 많이 좌절도 하고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인이다보니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을 당한다든가, 여자 셰프라고 은근히 무시당하기도 했고, 또 제가 있는 아트센터는 현지 네덜란드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였기에 그 구성원에 속하기도 힘들었어요."

최 셰프는 직접 요리, 서빙에 홍보까지 하면서 처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소셜미디어(SNS)에 예약 안내를 올리자마자 이틀 안에 전 좌석 예약이 마감됐고 심지어 그 뒤에도 계속 예약 문의가 이어져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갑작스러운 위기도 있었다. 전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네덜란드에서도 지난 3~6월 전국적인 봉쇄조치가 내려지자 대부분의 식당이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최 셰프는 식어도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포장이 가능한 메뉴를 발 빠르게 개발해 평소와 다름없이 운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직원들과 손님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맛을 꾸준하게 개발해온 노력 덕분이었다.

최민영 셰프는 단순히 한식을 유럽에 알리고 매출을 올리는 것을 넘어서서 외국인 여성 셰프로서 겪는 한계에 도전하고 따스한 철학을 담은 한식으로 여러 사회적 문제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은 좀 더 제 이상을 실현하는 레스토랑을 여는 것입니다.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닌,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알리기도 하고 전시하기도 하는 그런 플랫폼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대중들에게 디자인을 알릴 수 있는 창의적인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최 셰프는 인터뷰 마지막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술이 밥 먹여주냐고요? 네, 예술로 맛난 밥을 지어서 모든 예술하는 사람에게 의미를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