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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제도 깨고 신뢰 잃은 檢… 李와 치열한 법리공방 예고 [이재용 불구속 기소 ]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 뒤엎고
檢, 67일만에 ‘기소’ 최종처분
물증 없이 수사 명분만으로 기소
‘절제된 검찰력 행사’ 정면 배치

스스로 제도 깨고 신뢰 잃은 檢… 李와 치열한 법리공방 예고 [이재용 불구속 기소 ]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수사 전면중단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기소를 권고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의견을 검찰이 묵살하고 기소를 강행하면서 '과잉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수사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도입한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했다는 비판은 가중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3년6개월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법정에서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정농단 의혹 파기환송심 재판을 병행해야 하는 이 부회장 측의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다고 의심한다. 이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그룹 차원의 불법행위도 동원된 것으로 봤다.

검찰의 이번 기소를 두고 비판 여론이 뒤따르고 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뒤엎고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한 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강조했던 '절제된 검찰력 행사'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수사심의위는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이 부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져 삼성 경영이 불안해졌을 때 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신뢰를 제고하겠다며 자체 개혁방안으로 만든 수사심의위의 의견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 후 67일간의 장고 끝에 기소를 강행했다. 이를 두고 입증할 증거 등이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기소해야 할 정황 등을 만들어 수사결과 발표가 지체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30여명의 외부 법률·금융·경영·회계 전문가 의견을 광범위하게 듣고 그 과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정리했다고 검찰은 설명했으나 입증 증거가 부족한 관계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기소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미 각계각층 수사심의위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했는데도 다시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는 게 석연찮은 대목이라는 것이다. 1년9개월간 수사를 해놓고 수사의 명분만 늘어놓고 확실한 물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날 검찰은 학계와 판례의 다수 입장, 증거관계로 입증되는 실체의 명확성,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등을 판단했다고 기소 취지를 설명했다.

최진녕 법무법인 씨케이 대표변호사는 "추 장관이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만 해당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면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과 함께 또 다른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삼성 측의 부담도 커졌다. 이번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은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묶인다. 대법원은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 지원금을 제3자 뇌물로 인정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은 사실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두 사건이 갖는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양형 역시 밀접한 관계를 가질 공산이 크다.

다만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파기환송심 단계에 있고, 불법승계 의혹 사건의 경우 지금 막 공소제기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건이 병합될 가능성은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두 사건의 심급이 다르고 이번에 공소제기된 불법승계 의혹 사건의 1심 재판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만큼 두 사건이 병합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가 주요 화두 중 하나였던 만큼 한쪽 사건의 선고가 다른 한쪽 사건의 양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은 지난 1월을 마지막으로 반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이 부회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재판부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기피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현재 대법원까지 넘어갔고 언제쯤 재판이 재개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불법승계 사건 역시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이 이를 뒤엎은 만큼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고돼 선고가 언제 이뤄질지 가늠조차 어렵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구자윤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