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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수십조원 LNG선 수주에도 거제 노동자는 '떠난다'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 방문
신조는 대부분 LNG선··· 일거리 없어
협력업체 차별 대우도 인구유출 불러

[파이낸셜뉴스] 【거제=김성호 기자】 “LNG쪽 말고는 일이 없어요. 예전에는 명찰에 어디어디 소속이라고 써 붙인 협력업체 노동자가 많았는데, 이제 LNG쪽 경력(있는 노동자) 밖에 안 남았다고 보면 됩니다.”
“조선소가 일감이 많고 돈이 되니까 전국에서 젊은 사람이 많이 들어왔었죠. 이젠 다 나가고 빈 방 밖에 없습니다.”

지난 4일 찾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엔 건조 중인 LNG 선박이 도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한국 조선소가 자랑하는 멤브레인 타입(선체와 화물창이 일체화돼 상갑판 위로 길쭉한 LNG탱크가 자리한 형태) 선박들로, 당장이라도 출항이 가능할 듯 위용을 자랑했다.

LNG선 건조는 한국 조선업을 지탱하는 핵심 부문으로 꼽힌다. 2010년대 들어 해양플랜트 건조로 선회했던 한국 조선업이 크게 실패를 맛본 뒤 부여잡은 기둥이다. 1990년대 조선 황금기를 이끈 중심축이자 여전히 중국과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부문이기도 하다.

올해만 해도 카타르에서 103척의 LNG선 수주를 받은 데 이어 꾸준히 전 세계 LNG선 계약 절반 이상을 따내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조선소 도크에 LNG 선박들로 가득한 것도 이러한 이유로 풀이된다.

[현장르포] 수십조원 LNG선 수주에도 거제 노동자는 '떠난다'
4일 거제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LNG선이 가득 들어서 있는 모습. 사진=김성호 기자

■"LNG 아니면 일 없어 짐쌉니다"
거제 조선소 일대는 흐린 날씨처럼 침체된 분위기였다. 코로나19 직격탄까지 맞은 상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동산은 태반이 비어 있고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LNG 부문을 제외한 협력업체 기술자들은 일감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과거엔 명찰에 개별업체 이름이 적힌 협력업체 노동자가 많았지만 최근엔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특히 숙련된 경력 노동자의 유출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LNG 부문 협력업체 노동자 A씨는 “LNG쪽 용접만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같은 용접처럼 보여도 LNG랑 일반 선박이랑 달라서 일을 구할 때도 차이가 있다”며 “LNG쪽은 경기를 안 타는데 다른 쪽은 일이 없어서 감축되고 (거제를) 떠난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A씨는 “조선소에도 보면 다 LNG선이지 다른 배는 거의 없다”며 “한국이 LNG선 기술이 좋아서 수주를 받지만 다른 배들은 단가가 싼 중국이나 이런 곳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 직원으로 10년 이상 용접 일을 했다는 B씨는 “직영(본사)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B씨는 “경영진 비리 터지고 구조조정 있고 나서는 성과급이 다 없어져 연봉이 10년차인데 5000만원이 안 된다”며 “아내가 시내에서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벌이가 시원찮아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협력업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B씨는 “하청(협력업체)이면 나보다 경력이 더 되는 분들도 4000만원대로 안다”며 “직영보다 일도 고되고 위험한데 요즘은 일이 없다가 잘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차라리 모아둔 돈으로 다른 걸 하겠다고 짐 싸서 떠나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현장르포] 수십조원 LNG선 수주에도 거제 노동자는 '떠난다'
4일 거제도 대우조선해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일터로 복귀하고 있다. 이날 만난 조선소 직원들은 지난 몇년 간 협력업체 직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수십조 들어온다지만 현실감 없어"
옥포조선소 일대 부동산은 경기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곳이다. 부동산업자 C씨는 “몇 년 째 나가는 방은 많은데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협력업체 사람들 위주로 다 빠져나가고 있는데 도시가 죽어가고 있는 게 실감이 든다”고 말했다.

C씨는 “LNG선도 대량 발주해서 수십조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 나가고 있고 집도 세 싼 곳 위주로 빠지고 있어서 현실감이 없다”고 덧붙였다.

관광 등 다른 산업부문의 부진은 경기 침체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거제에서 가장 번화했다는 고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D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돈도 잘 벌고 가게에 와서도 거나하게 먹고 기분을 내기도 했다”며 “그런 모습을 본지가 참 오래된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이어 “여기 있어봐야 직영 아니면 최저임금 겨우 받고 하청 다니는 수밖에 없으니 젊은 애들은 다 떠난다”면서 “거제는 관광업이나 이런 쪽도 발달이 잘 안 돼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탄했다.

실제 거제시는 인구유출 증가와 주택거래 급감 등 활력을 잃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올해 2분기 거제시 인구는 등록된 사람만 715명이 줄어 경남에서 인구유출 2위를 기록했다. 타지에서 임시로 와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조선업 특성상 비등록 인구 유출이 몇 배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주택거래량 감소도 두드러진다. 최근 수년 간 평월 주택거래량이 1000건을 웃돌았지만 올 4월엔 355건, 7월은 615건에 불과했다. 거제 아파트값도 2016년에 비해 40%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