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심야 음식점 이용 제한
경비·택시·배달종사자 굶기 일쑤
편의점서 끼니 때우는 경우 많아
"혼밥족 대부분인데" 식당도 불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24시간 해장국집. 10여년간 이 해장국집을 운영해온 40대 이모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로 심야시간에 손님을 받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윤홍집 기자
"국밥 한그릇만 먹고 가면 안 될까요?" 30대 경비원 한씨가 물었지만 순댓국집 주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로 24시간 음식점 이용이 제한되면서 심야시간에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씨는 냄새 탓에 근무지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없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라곤 편의점뿐이다. 한씨는 "14시간 동안 밤샘 근무를 하면서 밥은 제대로 먹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푸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10여일 째 지속되면서 심야시간에 식사를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10일 방역당국 등에 따르면 술집을 비롯한 일반음식점 등은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매장 내 영업을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확진자가 나왔을 때 구상권이 청구된다.
■배달도 안되고…"밥은 어디서"
심야 근무가 많은 경비·택시·배달업 등 종사자는 배를 곯고 일을 해야하는 신세다. 밤샘 근무 탓에 심야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잦은데 음식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업무 특성상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난감해하기도 했다.
20년차 베테랑 택시기사 신모씨(68)는 "배달음식을 시킨다고 해도 차안이나 길가에서 먹을 수는 없지 않나"며 "음식점이 닫기 전에 서둘러 가서 요기를 하는데 새벽 3~4시가 되면 허기가 져서 금방 지친다. 얼마 전에는 밥을 못 먹어서 생전 안가던 편의점에 가서 끼니를 때웠다"고 말했다.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배달음식 포장재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로 골머리를 썩는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2교대로 근무하는 속기사 황모씨(30)는 15명이 넘는 동료들과 심야 근무를 한다. 이들에게 정해진 식사 겸 휴식시간은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다. 2시간 동안 15명이 교대로 식사를 해야 한다. 최근에는 24시간 음식점 막혀 배달음식을 자주 주문하는데 메뉴를 고르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
황씨는 "15인분 배달용기를 한번에 처리하려면 쓰레기 통이 넘쳐서 감당이 안 된다"며 "사무실에는 음식냄새가 진동해서 불쾌감도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메뉴 선택의 폭이 한정적인데 쓰레기까지 적게 나오는 걸 고르니까 먹을 게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심야 혼밥족이 대부분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24시간 음식점에는 손님이 찾아와 몰래 식사를 달라고 사정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설렁탕과 해장국 등 음식점은 장시간 육수를 우려내서 새벽에도 영업장 문을 열어놓는데, 허기진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신촌에서 설랑팅집을 운영하는 40대 이모씨는 "오랜 단골이 와서 일하느라 밥을 못 먹었으니 국밥 한 그릇만 달라고 하면 얼마나 난감한지 모른다"며 "국밥 한그릇 주다가 걸려서 벌금 300만원이라도 내면 억울한 거 아니겠나"고 한숨 쉬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이후 야간 취식 등 지침을 어긴 업소가 다수 적발됐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부터 자치구·경찰과 함께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점검한 결과 33곳을 적발해 집합금지 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영업자 사이에선 야간 영업 제한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해장국 등 음식점에선 새벽시간대 손님이 홀로 와서 식사하는 '혼밥족'이 대부분이라서 식당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20년이 넘게 해장국을 팔아왔다는 60대 김모씨는 "밤새 술판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국밥 한그릇 먹는 걸 막는 게 무슨 방역인지 모르겠다"며 "새벽에 해장국집에 한 두명씩 띄엄띄엄 오지 사람이 꽉 차는 거 봤나"고 반문했다. 그는 "상황이 안 좋은 만큼 방역을 강화하는 건 이해하지만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김나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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