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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네이버, 넷플릭스법에 성낼 일 아니다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네이버, 넷플릭스법에 성낼 일 아니다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들과 이동통신 사업자들, 사용자들 모두가 바이러스 확산에 맞서 싸우는 전투에서 인터넷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하도록 보장할 공동책임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던 올 3월 발표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성명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람들의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인터넷 사용이 늘어나자 유럽 통신회사들이 연결성 문제와 데이터 트래픽 정체 현상을 호소하면서 성명이 나왔다. EU는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통신사업자와 협력해야 한다며, 일시적으로 고화질보다는 표준화질로 비디오 화질을 다운그레이드하도록 권고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특수상황이지만 EU는 이 성명을 통해 비대면 디지털 사회의 네트워크 질서와 이용자 보호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규정했다.

정부가 일명 '넷플릭스법'이라고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특정 기업을 콕 찍은 규제법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니 작명은 다소 잘못된 듯싶다. 어쨌든 시행령 개정의 본래 뜻은 통신망 품질의 안정성을 유지해 결과적으로 이용자를 보호하는 책임을 스트리밍 플랫폼 사업자, 콘텐츠 사업자와 통신사가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고화질 영화를 보고, 학교 수업을 듣고, 재택근무도 하는 디지털 시대를 예상하지 못했던 시절 만들어 놓은 전기통신사업법은 통신망의 품질 책임을 오롯이 통신사업자의 몫으로 안겨놨다. 그렇지만 지금 어디 그런가. 통신사업자가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통신망을 업그레이드해도 쓰는 사람 많고 한꺼번에 수만명 쓸 통신용량을 쓸어가는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회사가 있는 한 통신사업자 혼자서는 감당 못한다. 디지털 사회의 이용자 보호 책임을 특정 기업에만 지우면, 자칫 비디오 화질 다운그레이드 정도로는 해결 못할 디지털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그러니 EU집행위가 말한 '인터넷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하도록 보장할 공동책임'을 시행령에 담겠다는 것이다. 비대면 사회의 새로운 디지털 도로질서 같은 개념 아닐까 싶다.

이 시행령 개정에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과도한 규제라며 성을 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통신망 안정성은 관심두지 않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부가통신사업자에게 통신망 안정성, 이용자 보호에 대한 책임을 나눠 지라고 하니 당장은 성날 만도 하겠다 이해도 된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네이버가 성낼 일이 아니지 싶다.
네이버의 사업이야말로 통신망 안정성이 높아지고, 활발한 이용을 보장할수록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 분야이니 말이다. 오히려 국적이나 서버 위치 따지지 않고 인터넷 도로의 트래픽이 많은 기업이면 공평하게 책임을 나눌 수 있도록 전문성 담은 방안을 제안하는 게 장기적으로 기업 이익에 더 맞는 쪽 아닐까 싶다.

통신망 사용이 늘어나고, 일상생활과 업무의 대부분이 통신망을 통해 이뤄지는 비대면 디지털 사회의 질서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통 크게 논의했으면 한다. 당장 눈앞의 내 손해가 얼마인지 계산기 먼저 두들기는 속좁은 논의 말고….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