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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펀드 판매 위축 불가피"

'원금 비보장 상품' 판매 까다롭게 "장기적으론 투자문화 성숙할 것" "소규모 운용사 소외·다양성 축소" "빅테크 경쟁서 은행 족쇄될 수도" "책임 소재 명확…제재 명분 우려"

은행들 "펀드 판매 위축 불가피"
(출처=뉴시스/NEWSIS)
[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시중은행들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후속조치로 '원금 손실 우려가 있는 비예금상품' 판매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내부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앞으로 관련 상품 판매가 위축되는 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전날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의결했다. 원금비보장상품의 기획과 선정·판매·사후관리 등 상품 판매 전 과정을 총괄하는 임원급 '상품위원회'를 두는 게 골자다.

위원회 심의 결과는 대표와 이사회에 보고해야 하고, 관련 자료 등은 서면·녹취 등 방식으로 10년간 보관해야 한다. 적용대상은 은행이 개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각종 펀드·신탁·연금·장외파생상품·변액보험 등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비예금상품이다.

일부 안전자산으로 운용되는 머니마켓펀드(MMF)·머니마켓신탁(MMT) 등 원금 손실 위험이 낮은 상품은 제외되고,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상품 심의는 부서장 협의체 등 하위조직에 위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고난도 금융상품, 해외대체펀드(기초자산 해외 소재), 위험도 중간등급 이상(1~3등급) 상품 등은 위원회가 직접 심의해야 한다.

이를 두고 은행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성숙한 투자 문화가 형성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관련 상품 판매 시장이 지금보다 더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상품 선정부터 판매, 사후관리 전 분야에 걸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모범규준을 보면) 원금 손실이 있는 상품을 판매할 때 지켜야 할 부분이 엄청 많아졌다"며 "정착되기까지는 시행착오가 있을 듯하다"고 평가했다.

은행 채널 판매가 제한적으로 운영되면서 대형 자산운용사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관계자는 또 "아무래도 판매사가 고객에게 제공할 자료의 신뢰성 등을 감안하면 (제조사인 자산운용사를 선택할 때) 대형 자산운용사 중심이 될 것"이라며 "소규모 자산운용사, 대안투자 전문운용사 등이 위축돼 투자상품 다양성이 당분간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고난도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는 이해한다"면서도 "1년 정기예금 금리가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예금과 비예금을 나눠 은행의 비예금상품 판매를 규제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의 자산 증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은행과 증권사 직원이 동일한 자격시험을 통해 펀드, 파생상품, 변액보험 등 판매를 하고 있다'며 "같은 상품을 다루는 금융사간 규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규제 형평성 문제는 카카오, 네이버 등 빅테크와의 경쟁 측면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부분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모범규준이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한 노력인 건 맞다"면서도 "금융 경계가 허물어지고 빅테크가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존 은행들의 발목이 묶이는 명분이 생긴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은행 직원들 입장에서는 모범규준에 포함된 내용 중 성과평가지표(KPI) 개선이 크게 와닿는 부분이다.
DLF 사태 이후에 은행들 자체적으로 판매실적 대신 고객만족도를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등 KPI를 개선했지만, 내규에 명시하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가 확실해지면서 문제 발생시 임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제재가 강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관계자는 "수익 중심에서 고객 중심의 상품 판매로 전환하는 과도기적인 시점에 일정 메시지를 주는 모범규준"이라며 "단순한 모범규준에 그치지 않고 강행규정처럼 얼마만큼의 실행력을 가지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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