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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수도도 안 들어오는 이곳, 대한민국 맞습니까" [현장르포]

전북 완주군 운문골

"전기도 수도도 안 들어오는 이곳, 대한민국 맞습니까" [현장르포]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임석웅(62)씨 모자가 사는 집은 수도도 없어 계곡물을 먹는다. 약간의 전기는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생산하고 있지만, 눈·비가 오면 이마저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전주=김도우 기자】 등유가 심지를 타고 올라와 불빛을 만들어 내던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그을음에 코안이 새까맣고 해가 지면 칠흙같은 어둠에 감싸여 적막만 감돌던 마을.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시골 마을의 풍경 얘기가 아니다.

만경강 최상류에 있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운용마을. 이 마을에서도 4륜 차로 2킬로미터를 더 들어가면 일곱 가구가 사는 운문골이 나온다. 걸어서는 30분 정도 가야한다.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운문골은 밤만 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힌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다는 임석웅(62)씨를 추석 연휴 마지막 날(4일)에 만났다. 임석웅씨는 "그나마 제 아이들은 나가서 산다. 지금은 어머니하고 살고 있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불편한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제일 불편 한 것은 노모가 이번 겨울을 어떻게 지낼지 난감하다"며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 했다.

"기자양반 한번 생각해봐요. 말이나 되냐고 이게. 전기가 안 들어와 밥을 먹으려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니 이게 조선시대도 아니고" 임씨 하소연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낮선 사람이 반가울 수도 있는데 거기에 자기들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자라 하니 불편함을 쏟아 냈다.

임씨는 "수년전(4-5년 전으로 기억했음) 태양광 패널을 완주군에서 주고 갔다"며 "(그런데)설치비, 배터리, 인버터(220v) 등 부대비용이 더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겨울에 눈비 오면 태양광도 안 된다"며 "(얼마전) 면사무소에서 2k와트를 3k 와트로 바꾸어 준다고 했는데 다 소용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임씨는 이어 "전화 설치도 내가했다. 수십년전 아버지 혼자 사셨는데 안부가 필요해 설치했다"며 "그 때는 고산면에서 중국집을 운영해 가능했던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하다 허리가 다쳐 지금 장애인이다. 그런데 장애인 수당도 주지 않는다"며 "그 이유가 10년 된 4륜구동을 운행하는데 이것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4륜 차가 아니면 이곳을 올 수 없다. 자갈길을 소형차로 올 수 없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임석웅씨는 "올 여름 비도 많이 와 태양광 전기가 소멸돼 냉장고 음식이 상한 일이 많았다"며 "전기밥솥에 햇밥 한번 해드리는 게 작은 소망이다"고 말했다.

현행 '농어촌 전기공급사업 촉진법'에 따르면 벽지의 경우, 3가구 이상의 농어민이 실제 농어업에 종사하며 주택에 실거주하면 국가에서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해줄 수 있다.

하지만, 운문골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거주하고도 농·어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골이 깊어 농사지을 여건이 안 되는데다, 요양 차 들어온 사람들로 전기 공급 사업 대상 조건과는 맞지 않다.

운문골 주민 이대성(65)씨는 "산간벽지에 무슨 농사입니까. 개간을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땅이 없다"며 "그래도 드문드문 한 7가구가 사는데 전기가 안들어오니 할말이 없다"고 했다.

'고산 면지'에 의하면 운문골은 마을회관에서 7km쯤 떨어진 곳에 약 20가구가 살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빨치산들이 마을에 모인다고 해서 취합지로 철거 대상지가 되면서 집들이 철거됐다. 그 이전에는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
임석웅씨 할아버지도 천주교인으로 이곳에 정착했다.

박금숙(85·임석웅 모친)씨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전기를 안 넣어주는 곳이 있냐고. 여기 운문골 사람들은 나라에서 버리고, 도에서 버리고, 군에서 버리고, 면에서 다 버린 사람들만 사는 곳인가 보다. 공무원들이라는 사람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964425@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