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국적자 국적선택 헌법불합치
"학업·취업 등 기본권 침해로 고통"
해외 한인2세 기본권 침해에 방점
분단국가 감안땐 시기상조 지적도
만 18세를 넘은 복수국적자가 병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한 국적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것은 헌법재판소가 해외에 거주하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기본권 침해에 방점을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징병제를 채택중인 대한민국 현실을 감안하면 시기상조라는 지적과 함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돼 온 복수국적의 문을 더 열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적이탈 자유 지나치게 제한"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에 위헌 결정이 난 조항은 만 18세 이전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복수국적자가 된 경우가 대상이다. 주로 해외에서만 지낸 복수국적자에겐 기간의 제한 없이 한국 국적을 포기할 길이 열린 셈이다. 가수 유승준씨 사례처럼 만 18세 이후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경우는 해당이 안된다.
현행 국적법상 미국 등 속지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 중 1명이 한국인이면 외국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국적법은 만 18세가 돼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복수국적자는 그해 3월31일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간이 지나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고,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만 36세까지 어쩔 수 없이 복수국적자로 살아야 한다. 더욱이 한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도 받을 수 있고, 외국의 공직 진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 미국에서 태어난 선천적 복수국적 신분 한인 2세들이 우연히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국적법과 병역법 규정을 몰라 국적포기를 하지 않아 기소되고 출국정지까지 당하는 사례도 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출생과 동시에 신고 없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복수국적자가 주된 생활근거를 외국에 두고 학업이나 경제활동 등의 생활을 해 온 경우 복수국적 취득과 국적이탈 등에 관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힌 점도 선천적 복수 국적자들의 기본권 침해를 의식한 결과다.
병역 회피시도 대안 마련 필요
다만 위헌 결정으로 복수국적자의 국적포기 제한이 완화되면서 해외 원정출산 등 병역기피 사례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헌재는 이번에 쟁점이 된 국적법 조항에 대해 종전에 제기된 7차례 헌법소원 사건에서 모두 합헌 또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가장 근래인 2015년 11월 헌재는 "국적이탈에 관한 이 정도의 제한마저 없다면 병역의무 이행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 어느 때라도 심지어 군복무 중에라도 한국 국적을 이탈, 병역의무를 면할 수 있다"며 "이는 현행 병역법 체계와 맞지 않고 성실한 대다수 병역의무 이행자와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소수(합헌) 의견을 낸 이선애, 이미선 재판관도 "복수국적자는 18세가 돼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때부터 3개월이 지나기 전이라면 자유롭게 국적을 이탈할 수 있고, 그 이후부터 병역의무가 해소되는 시점까지만 국적이탈이 금지된다. 해당 조항은 헌법이 요청한 병역부담평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회적 합의에 따른 면밀한 기준 설정 없이 개개인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섣불리 그 적용의 예외를 허용해선 안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단순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로 2022년 9월까지 법 개정을 주문한 헌재는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이들 조항이 입법목적의 달성에 기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따라서 향후 입법자는 이러한 입법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주무관청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국적이탈을 예외적으로 허가할 수 있는 적정한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도 이번 위헌 결정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왔듯이 향후 법 개정은 국적포기 제한을 일률적으로 없애는 것보다 제한 기조는 살려두되,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한해 국적포기의 길을 일부 열어주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법무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 지난해 12월 열린 공개변론에서 "한국인으로서 혜택을 누리다가 병역의무만 회피할 수 있다면 병역의무 평등 원칙에도 심각하게 위배된다"며 합헌을 주장한 바 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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