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과 함께하는 미라클 서울' 공연에서 비올리스트 안톤 강(가운데)이 정재형이 작곡한 '안단테'에서 솔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서울시교향악단
[파이낸셜뉴스] 첫 곡이 시작되자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바람은 이번 공연의 퍼커션 연주자로 협연했다. 간간이 어느 집 처마에 달려있었을 풍경이 바람에 맞춰 소리를 냈다. 피아노 소리에 맞춰 멀리 개들이 울었고 새들도 지나며 함께 노래했다.
지난 9일 한글날 저녁 6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현진건 집터에서 기적과 같은 세미 클래식 공연이 펼쳐졌다. 바로 서울시교향악단의 '미라클 서울' 공연이었다. '미라클 서울'은 클래식 선율을 통해 서울의 숨은 아름다운 명소를 소개하며 코로나 우울을 겪고 있는 시민들이 다양한 볼거리와 수준 높은 앙상블을 접할 수 있게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이번 공연은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저녁 6시부터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저녁 7시 20분여까지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10월 중순은 야외공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죠" 강은경 서울시교향악단 대표는 공연 시작 전 이렇게 속삭였다. 당초 이 공연은 8월 즈음 계획돼 있었지만 당시 서울시향 단원 중 코로나 19 접촉자가 발생한데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돼 지금으로 미뤄졌다.
이 날 '미라클 서울'의 첫 번째 공연은 싱어송라이터 겸 피아니스트 정재형이 중심이 됐다. 정재형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비롯해 과거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비춘 노련한 뮤지션이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경계에서 다양한 피아노 음반들을 세상에 내놨다. 이번 공연은 라이브 방송의 성격을 띄고 있기에 어쩌면 그가 섭외된 것은 대중들에게 서울시향의 이번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서 제격이었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 자락에 위치한 연주 장소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현진건이 노년시절을 보내며 '무영탑' 등 역사장편소설을 써내려갔던 곳이다. 이제는 터만 남은채 아담하게 정돈된 자리에 피아노가 놓이고 현악 주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사실 야외공연은 연주자에게 더욱 쉽지 않다. 공연이 진행되는 6시부터 7시 20분까지 해가 점점 저물면서 기온은 계속 내려가 불과 몇시간 새에 초가을에서 초겨울 날씨까지 맛봤다. 여기에 쉼없이 달려드는 날벌레와 모기떼, 바람으로 악보는 날리고 보면대가 쓰러기지도 했다. 서늘한 바람은 연주자의 손과 발을 꽁꽁 굳게 했다. 호른 연주자는 막간에 손이 시려 입으로 호호 불었다.
이번 공연은 정재형의 곡들로 모두 채워졌다. 그가 1999년에 발매한 앨범 '기대'와 2002년에 내놓은 '두번째 울림', 2008년의 '포 재클린', 2010년 '르 쁘띠 피아노', 지난해 선보인 '아베크 피아노' 앨범에 수록된 곡들로 채워졌는데 최근 앨범의 곡들이 다수 연주됐다. 여기에 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 김덕우, 비올라 안톤 강, 더블베이스 장승호, 호른 김병훈이 함께 했고 2014년 아시아 출신 최초로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문태국과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 키보드 플레이어 유종미가 객원 연주자로 더해졌다.
피아노 솔로곡 '오솔길'로 잔잔하게 시작된 공연은 이후 '미스트랄'과 '르 몽', '라 메르', '안단테', '썸머 스윔', '편린' 등의 연주로 이어지며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앵콜에는 '러닝'이 연주됐는데 이 곡에서 정재형은 유희열에 버금가는 가창력을 선보이며 열창했다. 관객들은 온라인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동을 표현하고 위트있는 댓글 놀이를 이어가며 재밌게 즐겼다.
정재형은 "이렇게 야외에서 할 수 있는 공연 기회는 정말 없는데 특별히 서울시향과 함께 하게 되어서 기쁘다"며 "언젠가 서울시향과 연주해봤으면 하는 꿈이 이루어진 날이어서 즐거웠다. 야외에서 연주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굉장히 좋은 연주자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서 좋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연주하는 순간 울컥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사실 서울시향이 주최한 공연이었지만 오히려 정재형의 개인 콘서트에 서울시향이 피쳐링한 느낌이었다.
물론 공연 후반 라메르에서 김덕우의 솔로와 안단테에서 안톤 강의 솔로가 돋보이며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서울시향의 색채가 조금 더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강은경 대표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향후 두 차례 더 프로젝트 시리즈 공연을 서울 곳곳에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을 넘어 내년에 얼만큼 더욱 진화된 모습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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