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4일 회장으로 취임했다./뉴스1
현대차그룹에 정의선 시대가 활짝 열렸다. 정의선(50)은 14일 현대차 등 임시 이사회를 거쳐 회장에 취임했다. 지난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에 오른 지 2년 만이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82)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창업주 정주영, 2세 정몽구에 이어 3세 정의선 시대를 맞았다. 정주영은 국산차를 개발했고, 정몽구는 현대차의 세계화 전략을 이끌었다. 정의선 신임 회장은 자동차산업 전환기를 맞아 미래차를 비롯해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중책을 맡았다.
정 회장의 경영능력은 이미 입증됐다. 지난해 가을 그는 직원들과 가진 타운홀미팅에서 현대차의 미래를 "자동차가 50%, 개인용 비행자동차(PAV)가 30%, 로봇이 20%인 회사"로 제시했다. 비전을 제시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몫이다. 정 회장은 그 점에서 자질이 우수하다. 작년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인 앱티브와 합작법인 모셔널을 세웠다. 지난 13일엔 싱가포르에서 미래차 혁신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수소차는 정 회장의 전공분야나 마찬가지다. 정 회장이 올해 삼성 이재용, SK 최태원, LG 구광모 회장을 잇따라 만나 배터리 동맹을 구축한 것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번 기회에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으면 한다. 한국 사회엔 재벌 체제는 무조건 나쁘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과거 정경유착이 낳은 부작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떤 기업도 법을 어겨가며 제멋대로 경영권을 승계하지 못한다. 전문경영 체제가 좋다는 것도 신화에 불과하다. 기업 전문가인 신장섭 교수(싱가포르국립대)는 "실증 연구 결과를 보면 전문경영보다 가족경영이 평균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낸다"고 말한다('기업이란 무엇인가'). 요컨대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라는 것이다.
스웨덴은 공익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고 계열사를 통제하는 방식이 자리잡았다. 5세대 승계가 조용히 이뤄진 발렌베리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발렌베리재단은 지주사 인베스터AB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ABB,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등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든 정치권이든 기업 지배구조를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 지나치다. 세계 최고 수준(50%)의 상속세는 되레 편법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의선 신임 회장에게 당부한다. 재벌 경영권 승계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난 2년간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타이틀 아래 사실상 총수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는 정식 회장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동시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책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회장이 '재벌 승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에 심는 유능한 선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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