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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나훈아 콘서트가 남긴 것

[윤중로] 나훈아 콘서트가 남긴 것
본방 사수를 못했다. 지난달 30일 밤 KBS 2TV를 통해 방영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얘기다. 추석 연휴 내내 화제를 몰고 다닌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재방송이 편성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송출한 방송국도, 콘서트의 주인공인 나훈아도 재방은 물론 온라인 다시보기 서비스도 없다고 못 박았다. 아~ 야속하여라.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며칠 뒤 지인이 카톡을 통해 나훈아 콘서트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고향, 사랑, 인생. 3부로 나누어 부른 노래와 사이사이 던진 멘트가 의미있고 신선했습니다. 오늘 나훈아는 자유로운 영혼의 사상가로 재탄생했습니다. 온 국민이 행복한 밤이었고 삭막한 2020년 추석을 훈훈한 추석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라는 코멘트와 함께였다.

한데 카톡 메시지가 지시하는 대로 들어간 사이트는 얄궂게도 중국판 유튜브 비리비리(Bilibili)였다. 검색창에 한자 이름으로 '나훈아(羅勳兒)'를 치자 수십개의 동영상 클립이 떴다. 그중 맨앞에 있는 것이 '한국 가성 나훈아 2020 KBS 독가연창회(韓國歌星羅勳兒2020KBS獨家演唱會)'였다. 거기엔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던 공연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노래는 '고향으로 가는 배'였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앞둔 선곡이었다. 이어 불려진 '고향역'도 마찬가지였으리라. TV 앞에 앉아 콘서트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인 것은 아마도 이 대목에서부터였을 것이다. 멀리 기적 소리가 울려퍼지고 나훈아가 익숙한 멜로디에 실어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라고 노래하자 랜선 너머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몇몇 관객은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불렀고, 또 몇몇은 흐르는 눈물을 연신 찍어 눌렀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훈아가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나훈아는 공연 도중 "국민 위해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자 누구는 "20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이 예인(藝人)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했고, 또 누구는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놀랍다"며 "나훈아의 발언을 오독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갑론을박은 무의미해 보인다. "오죽하면 저런 말을 했겠느냐"는 말이나, "그의 말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나 제 입장에서 저 편한 대로 한 말이어서다. 그리고 정작 당사자는 더 이상 말이 없지 않은가.

그 대신 "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내놨다는 그의 대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흐를 유(流), 행할 행(行), 노래 가(歌), 유행가 가수다. 남는 게 웃기는 거다.
'잡초'를 부른 가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부른 가수, 흘러가는 가수다. 뭘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얘기다. 그런 거 묻지 마소." 그러면서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불렀던 신곡 '테스형!'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세월은 또 왜 저래/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