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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건희의 혁신 리더십, 금융권에 '그림의 떡'인 이유

[기자의 눈] 이건희의 혁신 리더십, 금융권에 '그림의 떡'인 이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에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1988년 7월23일 정계최고 경영자 전지 세미나 연설 모습.(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이끈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혁신 리더십'에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금융권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해외 유수의 금융회사들과 경쟁도 벅찬 마당에 빅테크(Big Tech)의 금융업 진출도 본격화하면서 생존을 위한 혁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과거 삼성이 처한 위기에서 신화를 이룩한 이건희 회장의 혁신 리더십이 금융권에 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이 회장의 리더십은 위기 때마다 빛을 발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신속하고 정확했으며 과감했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마누라하고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휴대전화와 반도체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금융권도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당장 변하지 않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기에 과거에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도 성큼성큼 내디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업종 간의 벽을 스스로 허물면서 어찌 보면 이질적인 업종과도 '동맹'을 맺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조용병 회장 직속으로 디지털 혁신 전담조직을 가동했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입이 아프도록 '넘버원 금융 플랫폼'을 외치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디지털 혁신을 직접 챙기고 점검하고자 디지털 인력과 함께하는 제2집무실을 마련했다. 한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는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생존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권이 디지털 전환을 위한 혁신에 힘을 주고 있지만 삼성과 같이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한 미래 먹거리 창출은 요원하기만 하다. 혁신을 위한 리더십 구축이 만만치 않다고 분석한다. 이건희식 혁신에는 강력한 리더십(지도력)이 필수요건이지만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 구조상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되레 각종 외풍에 리더십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자칫 금융사고만 나도 금융회사 수장의 거취가 영향을 받는다. 금융당국은 관리 감독의 실패에 대한 자기반성도 없이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에도 금융권 최고경영자(CEO)에만 강력한 징계를 내린다. 최근에만 해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 대한 징계가 있었고 사모펀드 판매를 놓고 금융사 CEO들을 겨냥한 징계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있다.

정치권에선 금융사 CEO의 임기를 제한하려는 입법화 움직임마저 있다.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장기집권을 법으로 막겠다는 것인데 민간기업의 주주들이 결정할 임기를 지나치게 정부가 간섭한다는 비판을 넘어 '혁신'을 주도할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작금의 상황에 금융권 역시 일조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기적인 시각에서 실적을 내고자 무리한 영업을 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관치에 길들여지면서 정부의 간섭에 익숙해진 측면도 없진 않다. 셀프 연임 논란 등 도덕적 해이 비판을 받을 만한 요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금융회사의 잘못이 다소 있다 해도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글로벌 금융회사와 수천만명에 달하는 이용자들의 각종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 인터넷 플랫폼까지 완비한 빅테크 사이에 끼여 도태시킬 수는 없다. 금융은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이다.
이럴수록 역발상으로 금융회사들이 새롭게 변신할 수 있게 강력한 리더십을 세워줄 때다. 그래야 금융권에서도 생존에 대한 걱정을 넘어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 이건희 회장도 역발상으로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