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명의만 대여해준 속칭 ‘바지사장’의 허위진술로 실제 불법을 저지른 업주가 도피를 했더라도 해당 진술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속인 것이 아니라면 범인도피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범인도피 교사 및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위반,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범인도피 교사 부분을 무죄로 본 원심을 확정하되 배임 혐의는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등급분류 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게임물을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등 불법게임장을 운영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2013년 4월 지인인 B씨를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게임기를 직접 구입해 단독으로 게임장을 운영한 실제 업주라고 진술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B씨는 이듬해 5월 경찰조사에서 “경기도 쪽에서 게임기 딜러를 하는 사람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고 게임기를 구입해 게임장을 운영했다”는 취지로 허위진술을 했다.
검찰은 벌금 이상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A씨를 도피하게 했다며 B씨에게 범인도피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A씨에게는 범인도피 교사 및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횡령 혐의 등이 적용됐다.
1심은 A씨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횡령 혐의에 대해선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봤다.
반면 범인도피 부분을 유죄로 보고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B씨에게는 벌금 3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A씨만 항소한 2심에서 재판부는 B씨가 A씨로부터 게임장 시설을 마련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4700만원을 빌려줬고, 실제 이 돈이 게임기 구입 등에 사용된 점을 주목했다.
이를 근거로 2심은 “B씨가 검찰에서는 자신이 투자했다고 진술했고, 법정에선 해당 금원을 빌려준 것이라고 번복하기는 했지만 이 돈이 게임장 운영에 쓰였고, A씨가 게임장 운영 수익 일부를 주기로 한 사실에 비춰 B씨를 단순히 명의만 대여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과 동업을 한 사람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B씨가 경찰에서 자신이 실운영자이라고 말한 것이 허위 진술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 진술이 동업이 아닌 본인 혼자 영업을 하는 취지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공범인 A씨의 존재에 관해 묵비한 것에 불과하다”며 B씨의 행위를 범인도피로 볼 수 없는 만큼 A씨의 범인도피교사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은 다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다른 혐의를 무죄로 보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A씨의 형량을 높였다. 대법원은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무죄로 본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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