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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한국서 공짜網 쓰겠다는 넷플릭스

[이구순의 느린 걸음] 한국서 공짜網 쓰겠다는 넷플릭스
"한국 인터넷사업자들이 요구하는 망 사용료는 전 세계적으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담당자의 국정감사 답변을 듣고 혼란스러워졌다. 전 세계적으로 망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해외에서는 한국 인터넷사업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망 사용료를 지급한다는 말인가?

세계 최대 동영상업체 넷플릭스와 한국 인터넷사업자들이 수년째 끌고 있는 통신망 사용료 논란은 처음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였다.

인터넷서비스 사업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말하면 통신망을 깔아 그 사용료로 수익을 내는 사업이다. 통신망은 인터넷회사의 상품이다. 인터넷회사와 사용자가 통신망 사용계약을 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할인을 받을 수 있고, 통신망 사용료라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붙이도록 흥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상품을 아예 공짜로 쓰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사례는 사실 못 봤다. 일반 소비자가 인터넷회사에 찾아가 "앞으로 통신망 사용료는 돈 많이 버는 대기업에 받고, 나에게는 공짜로 인터넷을 제공하라"고 주장한다면 누구 하나 귓등으로라도 듣겠는가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넷플릭스는 한국 인터넷회사와 사용료를 흥정하는 대신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이라는 게 상대방에게 돈을 줄 의무가 없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해 달라는 말이다. 꾼 돈을 이미 다 갚았거나, 아예 돈을 빌리지 않아 채무가 없다고 주장할 때 이 소송을 한다. 그런데 버젓이 인터넷회사의 통신망을 쓰면서 돈을 낼 이유가 없다는 넷플릭스는 무슨 배짱인 걸까.

사업의 세계에서 씨알도 안 먹히는 공짜논리를 얘기하는 글로벌 장사꾼 넷플릭스의 도통 이해되지 않는 논리를 보면서 잠깐 고민하게 된다. 한국의 인터넷사업자들이 국내 경쟁에 눈이 멀어 한국에서는 통신망을 공짜로 쓸 수 있다는 밑자락을 깔아준 것은 아니었던가 싶어서다. 경쟁회사 가입자 뺏기에 넷플릭스를 끌어들이면서 한국의 통신망은 공짜라고 스스로 내준 건 아니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정부 정책도 한몫 거든 것 아닌가 짚어본다. 20여년 전 콘텐츠산업을 지원하겠다며 통신망은 싸게 사용하도록 만들어 놓은 정책을 현실에 맞춰 손보지 않아 화근을 만든 것 아닌가 싶다. 수입은 없고 아이디어만 있는 스타트업들이 콘텐츠산업의 주류였던 당시 만들었던 통신망 비용 정산체계를 글로벌 공룡 콘텐츠사업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밖에 없도록 정책 손질에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법원 판결에 토 달기는 조심스럽지만, 한국 법원의 판단도 법 논리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거대 글로벌 기업의 명분에 더 귀를 기울인 것 아닌가 살펴보게 된다.

넷플릭스가 해외에서는 통신망 사용료를 내는지, 안 내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원칙은 국내외 막론하고 누구나 인터넷회사의 상품인 통신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단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한국의 소비자들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통신사업자도, 정부도 법원도 그 핵심을 알아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체인팀장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