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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팔지 말라는 것'…징벌적 과징금 기준 '거래금액'에 '당혹'

'펀드 팔지 말라는 것'…징벌적 과징금 기준 '거래금액'에 '당혹'
© 뉴스1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금융당국이 금융사가 불완전판매를 했을 경우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직원에게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게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자 은행권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판매사의 수익이 아닌 판매금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하는데 은행들이 과연 펀드를 팔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도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28일부터 12월6일까지 금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DLF,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의 재발을 막고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인만큼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포함됐다.

대표적인 예가 징벌적 과징금 부과다. 금소법은 과징금 부과 한도를 위반행위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로 하고 '수입 등'의 정의를 시행령에 위임했다. 시행령에선 위반의 정도에 상응하는 제재를 부과하고자 '수입 등'을 상품 유형별로 계약의 목적이 되는 거래금액으로 정의했다.

투자성 상품은 투자액, 대출성 상품은 대출금, 보장성 상품은 보험료, 예금성 상품은 예치금으로 규정해 거래 규모가 클수록 제재 강도가 높아지도록 설계했다.

금소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징벌적 과징금을 최근 벌어진 라임사태에 대비해 보면 3577억을 판매한 우리은행은 1788억원, 2769억원을 팔았던 신한은행은 1384억원을 각각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게다가 판매사들은 과징금뿐 아니라 보상금도 내야 한다. 물론 당국이 내부통제기준 이행 등 위반행위 예방 노력, 객관적 납부 능력 등을 고려하겠다고 했지만, 과징금에 보상금까지 내야 한다면 판매사들 입장에선 판매액보다 많은 돈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내심 징벌적 과징금의 기준으로 '판매액'이 아닌 '수익'이 되기를 바랐던 금융사들은 시행령에 '판매액'으로 명시되자 '은행이 사모펀드를 판매할 수가 없고 결국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판매액의 1~2%에 달하는 수수료 수익을 벌 뿐인데 판매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하는데 펀드를 팔 수가 있겠느냐"고 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들이 리스크를 굳이 안고 펀드를 판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펀드는 안 파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한 징벌적 과징금이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결국에는 단순화된 상품 위주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데 저금리 기조 속에서 일반적인 상품만 거래가 된다면 금융산업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금융으로 가는 사다리를 걷어 차버린 것"이라고 목소리도 나왔다.

은행뿐 아니라 중·소형 운용사의 도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은행들이 펀드를 취급하지 않아 판매처가 사라진다면 결국 중·소형 운용사가 펀드를 판매할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중·소형 운용사들이 사모펀드 시장에서 망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결과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되레 다양한 투자상품이나 대출 등의 판매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역효과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