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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령수술로 환자 죽어도 '외국인환자 유치병원' [김기자의 토요일]

올해 1·2분기 보건당국 자료 들여다보니
의료사고 발생 병원 다수 유치병원 포함
외국인환자 사실 모른채 유사피해 우려
보건당국 늑장대응 → K의료 인식 악화

[파이낸셜뉴스] 의료사고를 일으킨 병원 다수가 보건복지부 외국인환자 유치의료기관으로 등록돼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중에는 외국인 환자가 사망하거나 무허가 유치업자로부터 환자를 소개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곳도 여럿이다.

수준 이하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받고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며 의료관광 큰 손으로 불렸던 국가에선 한국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환자 유치사업 취지를 무색케 하는 허술한 제도 운영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단독] 유령수술로 환자 죽어도 '외국인환자 유치병원' [김기자의 토요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들이 국내 의료기관에서 의료사고 피해를 입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지만 올해 국회에서도 관련 내용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의료사고 기소돼도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31일 확인한 보건복지부 ‘2020년 1·2분기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목록’엔 근 5년 간 환자 사망사고를 일으킨 병원 다수가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성형외과 부문이 심각한데 유령수술 사실이 불거져 당시 대표원장이 구속된 ㄱ성형외과, 권대희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ㅈ성형외과, 홍콩 재벌3세 사망사건을 일으킨 ㅇ의원, 이밖에 언론보도가 나오진 않았으나 의료사고로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다수 병원이 포함됐다. 주 진료과목도 성형외과·치과·안과 등 다양하다. <본지 6월 27일. ‘[단독] 정상치 10배 넘게 피 흘렸지만 '혈액 요청도 없었다'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허가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요건만 갖추면 (외국인환자 유치기관으로) 등록할 수 있다”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기등록 상태에서 의료사고가 일어난 후에 (다시) 등록하려는 경우엔 제재할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중대한 과실로 처벌받은 병원이라도 의료배상공제조합이나 책임보험에 가입해 있다면 등록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수년 간 법령을 통해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전무했다. 이제서야 제도 보완을 추진 중이라고 하지만 외국인 의료사고가 수년 째 반복돼왔다는 점에서 늑장대처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한 현직 의사는 “의료라는 게 목적이 치료고 미용이라도 기본을 지키면서 해야 하는데 과거 정부에서 무슨 상품 팔듯이 영업을 허가해버리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라며 “정부에선 손 놓고 있고 일부 이상한 의사들은 돈만 보고 엉망진창 (의료행위를) 하고 있으니 사고는 계속 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단독] 유령수술로 환자 죽어도 '외국인환자 유치병원' [김기자의 토요일]
외국인 환자 유치제도가 준비 중이던 2008년 당시 정부가 제공한 외국인환자 유치 홍보 사진. 보건당국은 최근까지 환자 유치실적을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피해 구제책 마련엔 소극적이다. fnDB

■환자유치만 강조, 관리는 부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환자유치를 산업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외국인환자 유치 통계를 ‘000만명 달성’하고 홍보하는 식이다. 덕분일까. 외국인 환자도 2015년 37만493명에서 2019년 59만866명으로 59.5% 증가했다. 미용성형 외국인환자는 더 크게 늘어 2015년 7만3163명에서 2019년 17만5688명으로 무려 140.1%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의료사고를 당한 외국인 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는 전무하다. 각종 불편을 감수하고 직접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 상담사례 정도가 고작이다.

재판까지 가더라도 한국 법무법인이 외국인 환자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고 증거제출에도 어려움을 겪는 탓에 내국인에 비해 승소가 더 어렵다는 평이다.

고국에 돌아간 뒤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도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단독] 유령수술로 환자 죽어도 '외국인환자 유치병원' [김기자의 토요일]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9년 외국인환자 유치제도를 도입해 일부 의료 영업을 허용했으나 피해관리 등 안전장치 마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김범석 기자

■보건당국·국회, 제도개선 관심無
외국인환자 유치제도는 한국의 선진적 의료기술을 차세대 국가발전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시행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17대 신성장 동력산업 중 하나로 ‘글로벌 헬스케어’가 선정된 게 결정적이었다. 정부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에 외국인환자 유치업을 허가해 사실상 환자영업을 가능케 했다.

유치업 허가를 받은 업자들은 보건당국에 등록한 외국인환자 유치기관에 환자들을 소개했다. 당시 국내언론은 '한국 사정에 친숙하지 않은 외국인환자와 영업능력이 떨어지는 병원을 모두 챙긴 정책'이라며 적극 반겼다. 한국 의료관광 산업이 급격히 몸집을 불린 배경이다.

문제는 외국인환자 유치기관에 대한 평가와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의료사고를 일으키거나 내국인 환자에 비해 과도한 금액을 요구해도 형사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찮았다.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유치기관 지정 취소사유를 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료사고나 각종 의료법 위반 행위는 빠져 있는 상태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지탄받는 유령수술과 공장식 수술, 각종 의료법 위반 사례가 거듭 보고된 의료기관까지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선 외국인 환자들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점이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란 주장도 나온다.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보고됐음에도 국회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선 지난 수년 간 관련 내용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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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