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토지에 승낙없이 설치한 묘지를 20년간 점유한 경우, 묘지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관습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A씨가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에 관한 관습법이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합헌) 대 2(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8일 밝혔다.
경기도 부천에 임야를 소유중인 A씨는 자신의 토지에 B씨가 관리중인 조상 묘지에 대해 분묘개장 허가를 받은 후 무덤을 파 옮긴 뒤 화장해 유골을 공원묘원에 봉안했다.
B씨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했는데 A씨가 분묘를 파서 옮긴 것은 불법행위"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가 확정됐다. 이 소송 3심 중 A씨는 분묘기지권이 자신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일제강점기부터 법원 판례로 인정돼 온 관습법인 분묘기지권은 분묘가 비록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설치된 것이라 하더라도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했다면 분묘와 주변의 일정면적의 땅에 대해서는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권리다.
따라서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땅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분묘를 철거하거나 철거를 요구할 수 없다.
헌재는 "비록 오늘날 전통적인 장묘문화에 일부 변화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분묘기지권의 기초가 된 매장문화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고, 분묘를 모시는 자손들에게 분묘의 강제적 이장은 경제적 손실을 넘어 분묘를 매개로 형성된 정서적 애착관계 및 지역적 유대감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우리의 전통문화에도 배치되므로 이 사건 관습법을 통해 분묘기지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이은애, 이종석 재판관은 소수의견으로 "관습법 성립에는 국회의 관여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관습법은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받은 규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며 각하 의견을 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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