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한동안 취업이 되지 않아 백수 생활을 한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친구도 가족도 어느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 물론 누구도 직접적으로 "취업 언제 하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언젠가 좋은 곳에 합격할 거야"라는 응원의 말조차 힘든 시기였다. 한동안 지속되던 대인기피증은 결국 취업이 되고 나서야 자연치유됐다.
취업을 하고 10년이 지난 후 대인기피증이 다시금 도지는 듯하다. 그때는 만나는 누구나 기승전'취업'이었다면 이제는 만나는 누구나 기승전'부동산'으로 흐르면서다.
오래된 친구에게 안부를 묻자 "이번에 '어디에' 집 사서 '얼마가' 올랐다"는 답이 오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세상이 됐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자리의 대화 주제가 결국은 부동산인 상황에서 무주택자는 대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히 아직 가점이 30점대지만 열심히 청약에 도전하는 나를 보는 시선들은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지" 하며 안타까움 일색이다.
지난 8월 김현미 장관은 다주택자·법인의 매물을 받는 "30대 영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으로 공급물량을 기다렸다가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으라며 "집값 안정효과는 곧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임대차2법으로 전세가는 폭등했고, 이는 집값마저 동반상승하게 만들고 있다.
당장 시장에 공급이 필요한데 정부가 기다리라고 말한 3기 신도시는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한다. 결국 빠르게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공급은 다주택자들의 매물이다. 김 장관은 다주택자의 매물을 받는 30대 영끌이 안타깝다고 했지만 시장에 그 매물이 풀려야만 하는 상황인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전세시장이 더욱 요동치고, 그와 함께 집값은 더욱 치솟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가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시장에 풀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
나의 대인기피증은 결국에는 내집을 마련해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년 전과 다른 점은 "언젠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 그때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부디 정부가 올 연말 또 한번 매매시장을 폭등시켜 '이룰 수 없는 꿈'을 만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aber@fnnews.com 박지영 건설부동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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