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정치논쟁으로 본 취지 퇴색
장애인 이동권 등 약자 목소리엔 참여인원↓
"논쟁장보다는 '신문고' 본연의 기능해야"
[파이낸셜뉴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정치판'이 되면서 정작 들려야 할 시민들의 낮은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국민청원 도입 당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 청원추천 1위 '커밍아웃검사 사표 받으십시오!'
청와대 국민청원의 역할은 위 두 단어로 압축된다. 신문고와 청원권이다. 하지만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은 신문고 역할을 통한 청원권 보장보다는 시사 논쟁의 장이 되고 있다. 특히 행정부 권한을 넘어선 정치문제, 사법부 판단에 대한 청원 글이 다수 올라온다.
우선 정치적으로 화제가 된 사안에 대한 글이 높은 추천수를 기록하고 있다. '커밍아웃검사 사표 수리 요구' 청원은 18일 기준 44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 청원 추천수 1위를 기록했다. '정경심 교수 무죄 주장' 청원에는 8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정치개혁'으로 분류되는 글의 청원 참여도가 높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법부 담당 사안이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민원이 몰리는 문제도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3권(입법, 행정, 사법) 만능창구'처럼 쓰이는 것. 청원답변 190호 글인 "'국민 민폐' 전OO 재수감을 촉구합니다" 청원이 대표적이다. 청원인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재수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보석 취소나 인신 구금은 사법부의 권한"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이 제한됨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 큰 소리에 묻히는 낮은 목소리
문제는 이같은 상황에 약자들의 호소마저 묻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권/성평등 카테고리의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바로 잡아주세요' 청원이 있다. 지난 5일 청원인은 본인을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20대 지체장애인 회사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미 두 차례나 콜택시를 2~3시간 기다렸다는 점,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저상버스 배차간격이 너무 크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모니터링 △교통약자 콜택시, 저상버스 확충을 요구하며 "제발 정부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바로 잡아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청원에는 193명이 참여해 정치이슈 관련 청원에 비해 참여인원이 현저히 낮다. 다음달 5일까지 20만명 이상의 참여를 받지 못할경우 청와대 답변을 들을 수 없다.
오는 29일 마감되는 '어느 마루시공자의 호소' 청원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이 청원인은 마루시공자의 불안정한 고용상황,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공비 등을 알리며 정부의 실태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 청원 역시 430여명이 참여해 답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대학 법대 교수는 "A라는 청원이 올라오면, 'not A'라는 청원이 올라오면서 '세력 과시'의 양상을 보인다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민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순기능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20만명 이상의 청원참여를 받아야만 답변하는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장애인이나 천막농성 노동자 등 약자의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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