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법 아니지만 사실상 '금지'
일본, 미국 등은 원정 출산 활발
부작용 및 윤리문제 해소 '아직'
[파이낸셜뉴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씨(41·여)가 미혼 상태에서 정자 기증으로 자녀를 출산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혼출산’ 양성화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은 사실상 미혼 상태에서 정자기증을 받아 출산하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지만 일부 국가에선 정자기증 제도가 양성화돼 원하는 조건을 갖춘 남성의 정자를 쇼핑식으로 선택해 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제도 밖에서도 여성이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와 함께 우월한 남성의 정자를 고른다는 인식이 우생학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상태에서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한 아들을 공개한 모습. 출처=KBS
■여성의 자기결정권, '비혼출산'까지 확대?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국에선 사유리씨와 같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생하는 방식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내부 윤리규정으로 인공수정을 미혼 여성에게 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개정된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으로, 어길 시 처벌을 받진 않지만 의료계 내부 제지를 받을 수 있다.
의료계에선 사회적 논의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규정을 개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법이 미혼모의 인공수정을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유리씨와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사유리씨는 올해 초 일본에서 정자기증과 인공수정을 통해 비혼임신에 성공했다. 올 3월 임신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달 4일 아들을 건강하게 출산했다. 사유리씨는 이런 사실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이후 한국에선 비혼출산 양성화가 화제가 됐다. 자발적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출산하고 어머니가 되려는 욕구를 기혼여성에게만 두는 게 부당하다는 의견이 고개를 든 것이다.
결혼제도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할 때가 됐다는 주장과 본인의 선택인데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않느냔 입장도 양성화 찬성론을 거들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 영국, 스웨덴, 스페인,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선 이미 비혼출산이 양성화돼 있다. 유럽연합 27개국 중 비혼출산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총 17개국으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한국에서 이들 국가로 나가 비혼출산을 할 경우 사실상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럽연합 선진국 가운데서도 비혼출산을 허용치 않고 있는 국가가 적지 않다. 특히 개인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독일과 프랑스조차 비혼출산을 양성화하지 않고 있다. fnDB
■"아이 동의는 받았나" 회의적 시각도
반대여론도 만만찮다. 태어날 아이에게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 1명이 원하는 비혼출산이 합당하냐는 주장이다. 남녀 양성의 혼인한 부모가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사실상 아이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게 아니냐는 게 주요 논지다.
출산을 선택하는 개인을 재력 등 외적기준으로 평가해 허용여부를 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미혼녀에게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게 타당치 않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당초 인공수정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기혼부부의 임신과 출산을 돕기 위해 쓰이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아무나 원하는 대로 출산을 가능토록 하는 건 기술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이 미혼 상태 여성에게 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을 허용치 않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미혼모에게 태어난 아이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 부작용의 우려가 크다는 점 등이 주로 언급된다.
인신매매나 공공연한 대리모출산 확산 등 윤리적 충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미혼모를 국가가 추적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허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밖에 정자기증을 통한 인공수정에서 여성이 원하는 정자를 선택토록 할 경우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우생학적 접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해소해야 할 과제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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