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대선에서 패했지만
트럼프 추종세력 재확인
백인 노동자 계층 달래야
1984년생 제이디 밴스는 미국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전도유망한 변호사다. 이 반듯한 백인 청년은 오하이오 출신으로 그곳에서 평범한 공립학교를 나와 해병대를 거쳐 이라크 파병부대 전투원 생활까지 했다. 예일대 교수들은 이 이력에 입을 쩍 벌렸다. 해병대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입학한 오하이오주립대 시절 구직 면접을 위해 그가 고른 복장은 해병대 전투화와 군복 바지였다. 기겁한 면접관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의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엄마 배브를 알아야 한다. 아들 밴스가 익숙해질 만하면 같이 살던 남자를 전남편으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간호사로 있으면서 마약을 상습복용하다 어느 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중환자실을 휘젓고 다닌 뒤 병원에서 잘리고 만다. 배브의 부모, 그러니까 밴스의 외조부모는 애팔래치아 남부 산골 켄터키 잭슨 출신이다. 장전된 총을 끼고 살았다. 먼저 싸움을 걸진 않으나 모욕을 당했을 땐 전쟁이 시작되는 건 물론이다. 부부 사이도 예외가 아니다. 외할머니는 술주정을 부리다 쓰러져 자던 할아버지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할아버지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밴스의 외조부모는 1940~195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23번 국도를 따라 북동부 공업지대로 터전을 옮긴 첫 세대다. 이들 백인노동자 계층을 빗대어 부르는 명칭이 힐빌리(Hillbilly)다. 밴스는 강인한 정신력의 외할머니 손을 부여잡고 극적으로 엄마의 덫에서 빠져나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힐빌리의 노래(2016년)'를 펴냈다.
힐빌리의 슬픔과 분노가 핵심 기반인 트럼피즘은 이번 대선에서 예상을 뒤집고 더 강고한 생명력을 보여줬다. 곳곳에서 펼쳐진 박빙의 접전은 미국의 심각한 분열상을 다시 각인시켰다. 23일(현지시간) 비로소 공식 확정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치유와 통합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운명이다. 지독한 말더듬이 7세 소년이 수녀 선생님에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말한 이후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자서전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에서 그는 이 나라의 놀라운 약속을 의심하게 만든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연민, 정직, 생각의 진실성, 관대함이 그의 정치적 신념이었다.
문제는 그 신념, 약속과 분열의 선두에 선 힐빌리 같은 존재들과의 간극이다. 밴스는 힐빌리 가정에 치명적인 것은 마약, 다툼, 가난 그 자체보다 정서적 빈곤의 되물림이라고 책에 썼다. 과감한 복지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스트레스, 슬픔, 두려움, 불안, 분노가 대를 이어 끝도 없이 되풀이된다. 힐빌리의 정체성은 애국심, 유대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수도 없이 들었던 음악이 애국찬가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다. 다들 목이 멨다.
이 구역의 경계를 에워싼 정서적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완벽히 그들에게 타인이었다. 음모론이 판칠 때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 극한의 거리감이 좁혀져야 통합의 단초가 마련될 것인데, 이를 끝까지 방해할 트럼피즘과 바이든은 또 4년을 싸워야 하는 운명이다.
바이든은 다시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트로이의 해법'을 읊을 것이다. "그러나 일생에 한번은 그렇게 바라던 정의라는 밀물의 파도가 솟구칠 수 있고, 희망과 역사는 운율을 맞춘다." 시험에 든 미국 민주주의가 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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