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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리포트]①"디지털 성범죄는 '박사' 전후로 나뉜다"

[조주빈 리포트]①"디지털 성범죄는 '박사' 전후로 나뉜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내용의 영상물을 공유하는 ‘n번방’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일명 ‘박사’로 지목되는 20대 남성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2020.3.19/뉴스1 © News1 이비슬 기자


[조주빈 리포트]①"디지털 성범죄는 '박사' 전후로 나뉜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2020.3.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조주빈 리포트]①"디지털 성범죄는 '박사' 전후로 나뉜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편집자주]"디지털 성범죄는 '조주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범죄 수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 수감)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약 90명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26일 그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됐다. 개인의 일탈적인 성향이 도드라졌던 기존 사이버 성 범죄자와 달리 조주빈은 조직화한 '집단 범죄'를 저질렀다. 총 14개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주빈이 국내 디지털 성범죄에 끼친 악영향과 제2의 조주빈을 가로막는 방안을 3편에 나눠 보도한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김유승 기자 = "본인 얼굴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 3월19일 오후 4시쯤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 검은색 외투 후드를 뒤집어쓴 20대 남성이 수사관들에게 붙들린 채 밖으로 나왔다. 남성은 포승줄에 묶인 손으로 후드 끝을 '꾹' 잡아당겨 얼굴을 최대한 가리려 했다. 그는 이미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얼굴이 아주 조금이라도 드러날까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취재진 가운데 누군가 소리쳤다. "(당신은) 피해자들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의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직화한 집단 범죄

포승줄에 묶인 20대 남성의 이름은 조주빈(25·구속 수감).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박사방' 운영자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약 90명을 협박해 '피해자들의 얼굴'이 드러난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해 박사방에 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그는 재판을 받았고 26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범죄 수사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는 '조주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진단한다. 조주빈 전에도 물론 디지털 성범죄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디지털 성범죄가 '조직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개인의 일탈적인 성향이 도드라졌던 기존 사이버 성 범죄자와 달리 조주빈 일당의 범행은 조직화한 '집단 범죄'였다. 조주빈 공범만 약 20명에 달한다.

조주빈은 2019년 8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박사방'을 개설한다. 대화방 닉네임은 '박사'. 그는 먼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고액 알바' '스폰서(후견인)을 구한다'는 글을 올린 여성들에게 SNS 문자를 보내 접근한다.

조주빈은 후견인이 되겠노라고 속인 뒤 이들에게 신상정보를 받았다. 이후 돌변해 '고액 알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린다고 피해자들을 윽박한다. 신상정보를 협박 수단으로 삼아 피해자들에게 성 착취물을 찍게 했고 이를 박사방에 공유했다.

지난 3월16일 조주빈이 검거된 후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많이 알려진 그의 수법이다.

◇성 착취물은 미끼고, 목적은 '수익'

"조주빈은 단순한 성 범죄자가 아니다. 기존 디지털 성 범죄자와 '사이즈'가 다르다. 말하자면 부정적인 의미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이다. 앞으로 범죄 수사 분야 학계에서 그를 연구해야 한다."

조주빈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고위 간부의 말이다.

주목할 점은 조주빈의 목적 자체가 달랐다는 것. 기존 성 범죄자 대부분은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욕을 해소하거나 쾌감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성 착취물 범죄를 일으켰다.

조주빈에게는 성 착취물은 미끼였고 목적은 '수익'이었다. 유사 범죄자로 분류되는 'n번방' 운영자 문형욱(닉네임 '갓갓'·24·구속 수감)과 이점에서 조주빈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갓갓은 재미를 목적으로 n번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뿌렸던 범죄자입니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았어요. 반면 조주빈은 철저하게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사기·공갈 협박범이죠."

조주빈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관계자의 분석이다. 실제로 조씨의 범행 이력 가운데 마약과 총기를 미끼로 벌인 '사기 행각'이 있다. 마약·총기를 구해주겠다고 한 뒤 돈만 받고 잠적하는 식이었다. 종합편성채널 JTBC 손석희 사장을 상대로도 공갈·협박 범죄를 감행했다. 조씨는 사기 협박범에 가까운 인물인데, 무대가 '디지털'이었던 셈이다.

수익 창출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아동 성 착취 사이트를 운영했던 손정우와 유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손정우마저도, 조주빈과 달리 조직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았다.

조주빈은 사실상 '부하'인 공범 20여명 두고 범행 과정을 '분업화'했다. 그는 Δ온라인(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개설 Δ회원 모집 Δ피해자 물색 및 협박 Δ성 착취 제작 Δ환전·인출·출금·전달 과정으로 나눠 범행을 했고 수익을 올렸다. 특히 환전·인출·출금·전달 과정은 금융 사기 범죄인 '보이스 피싱' 수법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조주빈은 보이스 피싱 범죄도 저지른 경험이 있다. 성 착취물이 유료로 운영되는 비밀 대화방 입장료도 온라인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가상 화폐'로 받았다.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현금이 아닌 '가상화폐'를 선택한 것이다. 금융 사기 범죄를 디지털 성범죄에 접목한 인물이 조주빈이다."

그를 수사했던 다른 경찰관의 말이다.

◇"20대 앳된 모습으로 범행…청년들에게 영향 가능성"

전문가들도 수사관들의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조주빈이 디지털과 온라인 금융 서비스 이해도가 높은 '20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조주빈이 20대의 앳된 모습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자체가 기존 성 범죄자와 가장 다른 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디지털 관련 도구·매체·서버, 영상 작업이 익숙한 세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요소를 큰 틀에서 분석하면 그의 범죄는 청년들에게 나쁜 의미에서 선도돼 국내 다른 범죄 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청년 비행 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아젠다(의제) 설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