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서 좌절
내년 계속 심리에도 미래는 불투명
야당 탓하는 여당에 국민은 '답답'
"반대자 누구인지 밝히라" 의견도
[파이낸셜뉴스] 국민 염원을 담은 ‘환자보호 3법’이 첫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의사 면허규제 강화, 행정처분 의료인 이력공개,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이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반대와 보건복지부의 소극적 태도 속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국회의원은 소수에 불과했다.
보건복지위원회 과반을 넘긴 여당의 입법의지가 선명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보건복지위 62.5%, 법안소위 54.5%를 차지해 자력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상임위와 소위 법안 통과는 재적의원 과반 동의로 가능하다.
<본지 6월 20일. ‘더민주 '장악' 보건복지위, '이 법안'이 성패 가른다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국민적 관심이 높은 환자보호 3법이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fnDB
■과반 더불어민주당 '소극적 자세'
28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의 소극적 자세로 환자보호 3법이 이번 회기 통과에 실패했다. 과반 출석, 과반 찬성으로 법안 통과를 의결하는 법안소위에서 과반 의석을 갖추고도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다.
법안소위 11명 의원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강병원, 김성주, 김원이, 남인순, 서영석, 신현영 의원이 포함돼 전체의 절반을 넘긴다. 이중 일부 의원이 부정적인 자세를 보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만장일치’를 미덕으로 삼는 관행을 따랐다는 주장도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 다수 의원이 법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환자보호 3법을 다루는 제1법안소위에 야당 의원이 5명 포함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다수 관계자는 “야당에서 반대하고 있고 이익단체들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책임을 야당과 대한의사협회 등에 돌렸다.
다만 국회법상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가능했다는 점에서 최종 책임이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는 해석이 보다 타당하다.
수술실CCTV 법안에 찬성입장을 가진 한 의료계 관계자는 “180석 의석을 차지한 거대여당에서 위원회 과반을 갖고서도 책임을 군소 야당에 돌리는 게 이해가지 않는다”며 “그렇게 떳떳하다면 누가 찬성했고 반대했는지 밝히는 게 국민적 관심이 큰 상황에서 집권정당의 도리가 아닌지”하고 비판했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 면허를 규제하자는 법안이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fnDB
■의협, 병원협회 '반대'··· 국회서 통했다
26일 법안소위에서 심사된 환자보호 3법 관련 법안은 총 7건이다. 의사면허규제 강화 및 이력공개 법안 5건과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 2건이다.
면허규제는 박주민, 강선우, 강병원, 권칠승 의원 등이 발의했다. 대체로 성폭력 및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고, 범행을 반복할 경우 재교부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업무 수행과 무관한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 의료인 면허에 대해 차별적인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규제”라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의협은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죄를 중복해 저지르는 경우 면허를 박탈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의료인이 의료업을 행함에 있어 소극적, 방어적 진료를 만연케 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 의원 반대로 회기 내 법안 통과는 좌절됐다. 권 의원 발의안에 함께 포함된 행정처분 의사 이력 공개 법안도 역시 통과되지 못했다. 해당 법안들은 내년도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선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등 전문직 대부분이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면허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사 역시 동등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헌법재판소도 2009, 2016, 2019년 3차례에 걸쳐 변호사법 이외의 범죄를 저지른 변호사에 대해 자격을 규제하는 변호사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해 전문직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확인한 바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사가 직무 외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면허를 규제하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에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사회적 검토를 더 해야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진은 박능후 복지부 장관. fnDB
■뜨거운 찬성론에도··· 복지부 "신중하게"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은 김남국, 안규백 의원이 발의했다. 이중 김 의원 안은 의원급을 제외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한정해 CCTV를 설치하자는 완화된 안임에도 끝내 부결됐다.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등은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했다. 의협은 “의료진을 상시 감시 상태에 둠으로써 의료진의 집중력 저해, 과도한 긴장 유발, 방어적 수술 및 기피 등 환자들이 제대로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되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존 반대의견을 되풀이했다.
의협은 “환자의 민감한 신체 정보가 유출될 경우 환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의료인 및 수술실 종사자의 동의를 고려하고 있지 않아 (환자 인권뿐 아니라) 이들의 기본권 및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병원협회 역시 “의료인의 인격권 및 직업수행의 자유 등 침해우려가 있고, 고난이도 영역 발전 저해와 전문의 수급문제 등 정책적 관점에서도 부적절하다”며 “극소수 의료인의 일탈행위를 전체 의료인·의료기관으로 무분별하게 일반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취지에는 공감하나, 입법 시 부작용 및 갈등비용, 되돌리기 어려운 정책 특성을 고려해 의료계, 환자단체 등과 충분한 기간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낸 점은 눈길을 끈다.
복지부는 “입법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 ‘자율’설치의 법적근거 마련 등 합리적 대안은 없는지도 병행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술실 CCTV를 500번 넘게 돌려보며 병원 측 과실을 상당부분 찾아내 민사 승소판결을 이끈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올해 초 국회 앞에서 수술실CCTV 법제화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권대희씨 유족 제공.
■의료사고 피해자들 "국회 직무유기"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에 ‘권대희법’이란 별칭이 붙을 만큼 법안 통과를 위해 애써온 고 권대희씨 모친 이나금씨는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씨는 “의사가 절대적 지위를 가진 수술실이란 공간에서 환자는 마취돼 기본적인 인식을 못하는데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CCTV를 달자는 것 아닌가”라며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유령수술이랑 성범죄가 계속 일어나 피해자가 쏟아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방치하자는 것이냐”하고 호소했다.
다수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환자보호 3법을 향한 뜨거운 여론을 무시한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상황이다보니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부담스러운 것”이라며 “CCTV 있다고 집중력 떨어지고 긴장돼서 수술을 못한다는 의사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 황당해 했다.
이재명 지사 주도로 도내 병원급 민간의료기관 300곳을 대상으로 수술실CCTV 설치비 전액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한 경기도는 “법적 근거 없이 의료기관의 자율참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복지부 의견에 반대했다.
경기도의 파격적 지원에도 병원 300곳 중 단 2곳만이 사업에 참여했다. 당초 참여의사를 밝힌 병원 여럿도 의료진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
26일 끝내 통과가 좌절된 환자보호 3법은 다음 회기에 모두 계속 심사될 예정이다. 다만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전향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이번과 마찬가지로 끝내 통과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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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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