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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리포트]③ "현 수사기법 한계…'함정수사' 일부 허용해야"

[조주빈 리포트]③ "현 수사기법 한계…'함정수사' 일부 허용해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3.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조주빈 리포트]③ "현 수사기법 한계…'함정수사' 일부 허용해야"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조주빈 리포트]③ "현 수사기법 한계…'함정수사' 일부 허용해야"
경기도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피해 상담, 디지털 기록 삭제 지원, 유포 모니터링 등을 전담하는 조직을 구성, 디지털성범죄 퇴출 및 피해지원 사업에 착수했다.(경기도 제공) © 뉴스1


[편집자주]"디지털 성범죄는 '조주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범죄 수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 수감)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약 90명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26일 그는 1심 재판에서 징역 40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개인의 일탈적인 성향이 도드라졌던 기존 사이버 성 범죄자와 달리 조주빈은 조직화한 '집단 범죄'를 저질렀다. 총 14개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주빈이 국내 디지털 성범죄에 끼친 악영향과 제2의 조주빈을 가로막는 방안을 3편에 걸쳐 보도한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원태성 기자 = 지난 3월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2층 조사실. 20대 남성 용의자가 느닷없이 자해를 시도하다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다만 발열 증세를 보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음성'으로 나왔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19'에 국민적인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모든 언론이 이 남성의 '정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코로나 이슈'를 단숨에 집어삼킬 정도로 그의 혐의기 끔찍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 범죄의 결정체 조주빈"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 수감) 얘기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약 90명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한 뒤 박사방에 이를 유포한 혐의 등 총 14개 죄목으로 기소된 그는 지난 26일 1심에서 징역 40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 성 범죄의 온갖 특징이 집약된 사건이 '박사방 사건'"이라고 말했다. 사이버 범죄 관련 업무만 10년째 하고 있다는 이 경찰관은 "디지털 범죄의 형태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그 변화의 결정체가 조주빈"이라며 박사방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수사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그 방안으로 '위장·잠입 수사'를 꼽고 있다. 이른바 '함정수사'로 불리는 위장·잠입 수사의 일부를 제도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특히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회제공형은 일선 수사관들이 범행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 그가 범죄를 실행하는 순간 검거하는 방식이다. 앞서 대법원은 수사관들이 마약류 범죄 추적 과정에서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를 벌인 것을 놓고 지난 4월 '적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위장·잠입 수사의 다른 유형인 '범의 유발형'은 범죄 의사 없는 사람에까지 접근해 범행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사관들 사이에서도 "적법성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 함정수사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박사방처럼 성 착취물을 공유·유포하는 비밀 대화방를 잠입해 수사하다가 운영자가 신분증을 요구할 경우 경찰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형사사법 절차상 증거를 채집하거나 임의 제출하게 하려면 통상적으로 경찰관 신분을 밝히고 영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령 신분을 속여 증거를 확보해도 법원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올해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 가운데 상당 수가 위장·잠입 수사를 통해 검거됐지만 경찰이 신분을 가장해 증거를 채집했다면 (재판 과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며 위장·잠입 수사를 허용하는 방안의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장·잠입 수사가 범죄 예방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암행 순찰차'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암행 순찰차란 일반 승용차처럼 꾸며 고속도로 등에서 단속 임무를 수행하는 차를 의미한다. 미국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개국 이상이 이 같은 형태의 '비노출' 단속을 하고 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단순 추적 수사가 아닌 선제적 예방 수사의 중요성이 제기될 정도로 디지털 성범죄는 도를 넘었다"며 "위장·잠입 수사가 허용되면 경찰관들이 몰래 수사 중이라는 경각심을 디지털 성 범죄자에게 심어줘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안 제출 상태…입법화까지 이어질까

국회에서는 아동·청소년을 겨냥한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할 때는 '신분 비공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법안이 지난 5일 제출된 상태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분을 비공개하고 정보통신망을 포함한 범죄현장이나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접근해 증거·자료를 획득할 수 있다"고 적시됐다.

사실상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허용하자는 대목이다.

전문가들도 디지털 성 범죄의 특징인 '익명성'을 고려해 함정수사의 일부를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디저털 성 범죄 추적이 어려운 것은 '익명성' 때문"이라며 "일정한 수준의 위장 잠입수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디지털 발전 속도가 빠른 데다 사이버 범죄까지 많다.
그러나 그동안 대응 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소홀하게 생각한 면이 있다"며 "현재 수사기법만으로는 디지털 성 범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위장·잠입 수사 없이 'n번방', '손정우의 다크웹', '박사방' 등 디지털 성범죄 현장을 추적하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과 확산 속도를 고려해 위장·잠입 수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범죄 의사 없는 사람에까지 접근해 범행을 유도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에 대해선 "허용돼선 안 되고 오히려 처벌해야 할 수사 방식"이라며 "수사관들이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