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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등 하루 830건 발생
인력 부족으로 수사 제대로 안돼
연간 피해자만 수백만명에 달해
경찰, 사기 대응 전략 수립 돌입
최근 연이어 펀드 환매 중단 사건을 일으킨 '라임자산운용'(라임)과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사태로 사기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기 범죄 피해자들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유사 사기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사기 사건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 변호사 A씨는 올해 비슷한 사건 4건을 맡았다. 이른바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다. 자동차 리스나 부동산 투자, 블록체인, 신약개발 등 매개만 다를 뿐 사기수법은 대동소이하다. 원금 보장에 매달 높은 이자까지 준다며 투자자를 모은다. 초반 몇 개월간 약속한 이자를 꼬박꼬박 주니 입소문이 퍼진다. 자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조용히 잠적한다. 퇴직금은 물론 빚까지 내서 모두 털어 넣은 피해자는 앞길이 막막하다. A씨는 가해자들이 변호사비를 수억씩 턱턱 내는 모습을 수 차례 보았다며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옛말처럼 느껴졌던 '눈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사기 피해자가 연간 수백만명씩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경찰서는 사기 사건 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전통적인 수법에 더해 유사수신과 신종 사이버사기 사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모아 가지 않으면 사건이 넘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지경이다.
■치안강국 이면은 사기공화국?
11월 30일 경찰에 따르면 연간 발생하는 사기 사건이 지난해 역대 처음으로 30만건을 넘겼다. 8년 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서 가입국 중 사기범죄율 1위를 차지한 한국은 사기 범죄율이 10% 이상 늘었다. 치안강국으로 정평이 난 한국의 씁쓸한 이면이다.
하루 평균 830건의 사기 사건이 경찰에 접수된다. 일선 경찰서에서 평소 다루는 사기 사건만 수천 건에 이른다.
경찰은 쏟아지는 사기 사건을 처리하에도 버거운 상태다. 피해액이 크지 않은 사건은 피해자가 증거와 피해내역 수집 등 수사기관 역할을 대신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받아들여질 지경이다.
제대로 수사되지 않는 사건도 속출한다. 지난해 서울동부지검이 밝혀낸 500억원대 택배기사 취업알선 사기가 대표적이다.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해 사기 일당 등을 재판에 넘겼다.
수사 결과 물류회사와 13개 자회사를 차려 사기를 벌인 일당에게 생계가 급한 피해자 1894명이 523억원을 뜯긴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 한 관계자는 "고소로 사건을 인지하면 다른 피해도 있는지 훑어보고 연관성 있는 다른 기관에도 문의하고 현장에서 탐문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며 "당장 인력이 부족한데 많이 알려졌거나 눈에 드러나는 피해액이 큰 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폭증하는 사기, 허덕이는 수사기관
범죄자는 거듭 진화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유사수신 업체의 사기 수법이 진화했다며 소비자경보까지 발령했다. 올해 금감원에 접수된 유사수신 신고·상담도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했다.
금감원은 매년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 수백건을 수사의뢰하고 있지만 피해액이 보전되는 경우는 드물다.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금을 모은 뒤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는 수법은 같지만 범죄 실행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방법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계모임부터 스타트업을 가장해 투자설명회를 열고 투자금을 받는 방식, 정식 금융기관이나 보험사를 활용하는 수법까지 각양각색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증도 안 된 라임자산운용 부실펀드를 유명 회사들이 나서서 팔아줘가지고 지금 피해가 양산된 게 아니냐"며 "사기 사건이 진화하는 속도에 맞춰서 대응하는 수사팀도 기민하게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원에선 매일 같이 사기 사건 공판이 열린다. 법정 앞으로 몰려온 피해자들이 울음을 쏟아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경찰은 사기 범죄 급증에 대응해 원인과 대응까지를 포괄하는 전략 수립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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