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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누가 지키냐고요…바로 저, 36살 완주 고산 소농마을 이장입니다

나이는 어려도 어느덧 3년차 ‘농부’
할 일 많은 데 해가 짧아 아쉬워요 
완주군 고산면 소농마을 고병진 이장
‘최연소 이장’ 완주군 기네스 등재

마을은 누가 지키냐고요…바로 저, 36살 완주 고산 소농마을 이장입니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소농마을 고병진씨(36)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30대 젊은 이장님이다.


【파이낸셜뉴스 완주=김도우 기자】 농촌 마을에서 이장(里長)은 바쁘다. 고령화가 높은 곳에서는 어르신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모아 마을의 대소사를 처리해야 한다.

농민들과 군청, 읍·면사무소, 농협을 오가며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이장의 몫이다.

고령화 정도가 심해지면서 이장 연령대가 낮아졌다고 해도 60대 이상이 주류다.

이런 가운데 30대 젊은 농부가 이장을 맡고 있는 곳이 있어 화제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소농마을 이다. 이제 36살. 이른바 청년농부다.

나이는 어리지만 농업에 발을 디딘 지 3년째 된다.

고병진 이장은 논밭 1만3,000여㎡를 홀로 경작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동네 대소사를 챙기는 이장 역할까지 맡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수원이 좋고 수렁이 많아 ‘수렁골’로 불렸던 ‘소농(所農)마을’ 엔 현재 밭농사를 주로 하는 20여 가구에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은 누가 지키냐고요…바로 저, 36살 완주 고산 소농마을 이장입니다
완주군 고산면 소농마을 전경. 사진=완주군제공

고 씨가 유일한 30대이고, 40대 1명 외에 나머지 주민은 70~80대에 해당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한 곳이다.

고 이장은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한 후 스물여덟의 나이에 결혼해 한때 완주공단으로 출퇴근했다.

하지만 직장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조부모님 농사를 거들며 부농을 꿈꾸는 토박이다.

그는 3년 전 어느 날 전임 마을이장의 제안으로 어르신들에게 농사도 배울 겸 덥석 이장 바통을 이어받았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어요. 아직 젊고 봉사하는 일이니 한번 해보자, 이런 심산이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취임 첫해부터 마을 입구 진입로 공사를 비롯한 농로 포장 등 굵직한 동네 현안을 심부름하느라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매일 공사 현장을 확인해야 했고, 어르신들로부터 일일이 동의서를 받는 것부터 공사 감독관과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주민 뜻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등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동네 공사에 매달리다 보니 2년이 훌쩍 지나갔다.

최근엔 소농마을과 같은 산간벽지까지 태양광 바람이 불어 토지의 손바뀜이 많아졌고, 덩달아 늘어난 외지인들의 요구도 급증해 젊은 이장을 더욱 바쁘게 하고 있다.

마을은 누가 지키냐고요…바로 저, 36살 완주 고산 소농마을 이장입니다
고병진 이장은 하루가 바쁘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모셨던 어르신들의 요청에 동네 위험구간의 풀베기 작업이나 외딴 곳 밭갈이는 일상이 되었다.

면사무소에서 요구하는 인구조사 등 각종 조사부터 연말 퇴비 신청 등 서류를 꾸며야 하는 일, 심지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도시 자녀들에게 보내주는 일까지 그의 몫이다.

매년 4~6월 농번기나, 9~11월 수확기와 파종기엔 일손이 딸리는 어르신들의 지원 요청이 더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체리나무 재배와 고추,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정작 자신의 밭작물을 돌볼 시간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6년 전부터 시행착오를 겪어온 체리나무 농사는 아직도 돈만 까먹고 있다.

하지만 그는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 하시는 모습과 “고생했어!”라는 격려 한 마디에 피곤이 봄눈 녹듯 녹는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도시의 자녀 집이나 요양병원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동네를 더 잘 지켜야 한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하나 둘씩 늘어가는 빈 집을 보면서 ‘내가 이장 역할을 잘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매일 쇠락해 가는 이미지를 벗고 젊은이가 돌아오는 동네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964425@fnnews.com 김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