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마치고 동료의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윤 의원은 12시간48분 발언해 최장 발언 기록(이종걸 전 의원·12시간 31분)을 경신했다. 2020.12.1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호승 기자 = 2020년 정기국회 마지막 날 시작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14일로 엿새째를 맞았다.
국회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시작으로, 12월 임시국회 첫날인 10일부터 13일까지 국가정보원(국정원)법 개정안, 13일부터 이른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인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는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인 만큼 여야는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의 발언을 놓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9일 첫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가 열리는 오후 2시부터 정기국회와 함께 필리버스터가 종료되는 밤 12시까지 약 10시간을 버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김 의원은 10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할 것에 대비해 필리버스터 전부터 물을 적게 마시고 기저귀를 준비했다. 목 스프레이, 안약 등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시간을 버틸 생각이었지만, 김 의원의 공수처법 반대 필리버스터는 2시간59분만에 종료됐다. 여야가 필리버스터에 앞서 비쟁점 법안 137건을 먼저 처리하기로 하면서 필리버스터 시작 시간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10시간의 토론을 준비한 김 의원은 이날 오후 9시가 돼서야 연단에 오를 수 있었다.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를 강타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필리버스터가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약 12시간째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던 12일 새벽 3시15분쯤 박병석 국회의장은 윤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고 "어제 필리버스터를 한 국회의원 중 한 분이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1시간쯤 뒤인 새벽 4시12분에 윤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마치자 "방역을 위해 본회의를 정회하기로 결정했다"며 본회의를 정회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자 본회의는 12일 오후 8시부터 속개됐다.
본회의가 정회되기 전 윤희숙 의원은 필리버스터 신기록을 갱신했다.
지난 7월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5분 자유발언으로 화제를 모은 윤 의원은 단상에 오른 11일 오후 3시24분부터 12일 새벽4시12분까지 12시간48분 동안 쉬지 않고 발언해 종전 기록(2016년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 12시간31분)을 갈아치웠다.
윤 의원은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 기록뿐만 아니라 국정원법 개정안,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5·18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국가가 개인에게 '닥쳐'라고 하는 느낌의 '닥쳐법'"이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필리버스터에 나선 의원들의 발언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실언성 발언이 나와 논란을 빚었다.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은 의원은 국정원법 개정안의 첫 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다.
이 의원은 10일 8시간44분 동안 토론을 했는데, 민주당은 이 의원의 발언 중 '아녀자'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 의원은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을 문제 삼아 "대한민국은 아녀자들이 밤거리를 걸을 수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나라인데 경찰마저도 흔들어서 자신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조직으로 쪼개고자 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이 '아녀자' 발언을 할 때 본회의장의 민주당 의석에서는 이 의원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의원은 또 "문재인 대통령이 잘생기고 감성적이어서 지지했던 여성들이 요즘은 고개를 돌린다"고도 했다.
네 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법조기자단 해체'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홍 의원은 11일 국정원법 개정안 찬성 토론에 나서 "저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법조기자단을 해체했으면 좋겠다. 법조기자가 다 받아쓰기만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진보매체인 한겨레·경향부터 법조기자단에서 철수시키라. 그것이 국민의 검찰개혁에 함께하는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결단을 내려 달라. 공영방송 KBS·MBC도 앞장서서 법조기자단을 빼라"고 언론사를 향해 압박성 발언을 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필리버스터 중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불필요한 침해 같은 경우에는 성폭력 전과자의 재범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 등이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해 "성범죄 인식이 충격적"이라고 비판하자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 본의와 다르게 뜻이 전달된 것 같아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다만 김 의원은 "그 이야기의 전후를 들으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고 조두순 같은 특정 부류의 범죄자에 대한 지금의 대책이 오히려 재범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필리버스터에 나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비속어를 사용했다.
태 의원은 14일 대북 확성기를 통한 방송이 필요하다면서 "북한 군인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는데, 지금 휴전선 일대에서는 '야 김정은 죽어라. 저 XX'식 방송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14일 미국을 향해 "자기들은 5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갖고, 전술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어떻게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을 가지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해 북한의 핵보유를 두둔하느냐는 논란을 빚었다.
야당의 충분한 토론을 보장하겠다던 민주당이 필리버스터에 대한 강제 종료 절차를 밟은 것을 놓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필리버스터가 강제 종료된 것은 이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은 12일 코로나19 확진자가 950명을 기록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국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국민의힘과 정의당에 필리버스터를 종결해달라는 비공개 제안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등이 이 제안을 거부하자 민주당은 12일 오후 8시9분 국회 의사과에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서를 제출했고,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의 건은 다음 날인 13일 오후 8시10분부터 무기명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 결과 종결 동의의 건은 재석 의원 186명 가운데 찬성 180명, 반대 3명, 무효 3명으로 가까스로 재적의원의 3분의2(180명)를 채워 가결됐다.
한편 민주당 등 범여권이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서를 제출함에 따라 14일 밤 종결 동의 표결이 이뤄진다면 필리버스터는 6일 만에 끝나고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공수처법 개정안 등 3건의 법안은 14일까지 모두 처리될 예정이다.
9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필두로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3건의 법안에 대해 14일 오후 5시40분 기준으로 이재정 민주당 의원까지 총 20명의 여야 의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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