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임기후 안전판 못돼
임기말 오만·독주 경계하며
국정 궤도 이탈 바로잡아야
어느덧 문재인정부의 임기 4년차가 저물고 있다. 등산으로 말하면 하산길이다. 전문 등반가들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는 걸 안다. 역대 어느 정권이든 권력이양을 앞둔 임기 말엔 대개 바람 잘 날 없었다.
현 정권의 하산길도 스산하다. 소득주도성장론과 일자리 위주 J노믹스 등 임기 초 수사는 진즉 빛이 바랬다. 성장률, 청년실업 등 지표들은 바닥을 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출한 3차례 '평화 쇼'의 뒷맛도 씁쓸하다. 그사이 핵능력(곧 평화 파괴역량)을 더 키운 북이 남의 구애에 배짱만 튕기고 있으니….
울산 지방선거 개입 의혹과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논란,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등 청와대로 불똥이 튈 악재들도 차곡차곡 쌓였다. 엎친 데 덮친 듯 한껏 자랑해온 코로나19 방역마저 위기다. 백신 없이 3차 대유행을 맞으면서다. 신속한 진단과 추적·격리 등 국민과 의료진의 인내와 헌신으로 쌓아올린 K방역이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이런 험로에서 여권은 검찰개혁에 내닫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명분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론은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건드리자 추미애 법무장관을 앞세워 찍어내는 걸 보면서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단죄에 앞장선 그를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를 때와는 딴판이다.
국민의 원하는 검찰개혁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권력에서 독립해 정치적 중립, 둘째는 국민의 감시 속에 절제된 권한 행사를 지향토록 하는 것이다. 이 중 여권은 전자는 외면하고 후자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그러니 정권 방탄용이란 의심을 산다. 174석 거여가 약속한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을 회수한 데서 보듯이.
물론 공수처를 두고 '친문 게슈타포'란 비난은 과한 낙인 찍기일 수도 있다. 다만 모든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 정도가 있을까. 특히 '…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해 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공수처법 24조 1항이 문제다.
그렇다고 검경에 대한 기소권, 수사권을 모두 틀어쥔 공수처가 정권의 확실한 안전판일까. 처장과 소속 검사를 몽땅 친정권 인사로 채운다면 이론상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임기 후에도 통할까. 정권 재창출 후에도 늘 전 정권 청산이 이뤄졌던, 부박한 정치사를 돌아보면 답은 뻔하다.
'죽은 권력'에 대한 감시견(watch dog) 역은 잘하면서 산 권력의 수호견(guard dog) 노릇을 하던 검찰의 악습이 공수처로 이름표를 바꿔 달면 달라질까. 새 정부 임기 초반엔 전 정부의 권력형 적폐가 쏟아지기 마련이고, 전 정권이 만든 공수처인들 죄다 눈감아주긴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은 피해자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언제까지 진실을 덮을 수 있겠나.
에이브러햄 링컨은 "소수를 오래, 모두를 잠시 속일 수 있을 순 있지만 국민 전부를 영원히 속일 순 없다"고 했다. 현 정권이 평온한 퇴임 후를 바란다면 임기 말 오만한 입법독주부터 경계해야 한다. 입안의 혀 같은 공수처를 만들려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궤도를 이탈한 국정을 바로잡는 데 기울여야 할 때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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