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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대리기사 떠난 뒤 10m 음주 주차 무죄...왜?

17일 서울동부지법 무죄 선고
형법상 긴급피난 인정사례
사고 피하는 목적 인정돼
대리기사가 촬영해 신고

[파이낸셜뉴스] 대리기사가 주차장 인근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음주상태에서 주차장까지 10m를 운전한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다른 차량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주차장까지만 차를 움직인 것이란 게 이유다.

대리기사가 주차장 앞까지만 차량을 운행하고 주차를 거부하거나 추가 주차비를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향후 판단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법원, 대리기사 떠난 뒤 10m 음주 주차 무죄...왜?
대리기사가 차를 주차장 앞 도로에 세워둔 채 운행을 거부하자 직접 운전해 주차장에 차를 댄 남성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fnDB

■대리기사, 말다툼 후 주차거부
2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제6단독 손정연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리기사가 음주운전으로 신고한 A씨는 지난 6월 30일 자정이 지난 시각 서울 성동구 한 노래방 앞 도로에서 노래방 주차장까지 약 10m를 음주상태에서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함께 술자리를 한 일행 2명과 노래방에 가기 위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A씨는 대리기사에게 "과속방지턱이 많은데 밟고 서고 하지 말고 천천히 가달라"며 "급한 게 있으면 다른 사람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화가 난 대리기사가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이들은 말다툼을 벌였다. 다른 일행이 개입한 뒤에야 대리기사는 목적지까지 운전을 했다.

노래방이 가까워지자 대리기사는 차량을 도로에 세워둔 채 차에서 내렸다. 당시 차량이 멈춘 장소는 노래방 주차장과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2차선 도로 중 2차로였다. 인근에 주차금지구역인 버스정류장과 소화전이 있었고 도로 위엔 주차금지를 알리는 황색 점선이 표시돼 있었다.

법원, 대리기사 떠난 뒤 10m 음주 주차 무죄...왜?
대리기사가 주차를 거부하고 음주상태에서 직접 주차하는 운전자를 신고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fnDB

■대리기사가 직접 촬영해 신고
A씨 측은 당시 도로가 내리막길인데다 야간이고 비까지 내리고 있어 교통흐름 방해는 물론 사고 가능성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일행 중 한 명이 차도로 나가 지나가는 차량이 없을 때 신호를 줬고 다른 일행 한 명은 주차장 앞에서 수신호를 했다. A씨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차량을 후진해 주차했다.

대리기사는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음주운전 혐의로 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함께 술을 마셨던 일행에게는 운전을 부탁할 수 없었고 빼주러 나온 노래방 업주나 주변의 일반 행인에게 위 차량의 운전을 부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하여 발생하는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확보되는 법익이 위 침해되는 이익보다는 우월하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무죄 취지를 설명했다.

형법 제22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의 경우 긴급피난으로 법적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한편 음주상태에서 주차를 위해 시동만 걸어도 음주운전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잇따르자 일부 대리기사가 주차비를 추가로 요구하고 주지 않을 경우 주차를 거부하는 피해가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일부 대리기사는 운전자가 다른 차량 통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촬영해 음주운전 신고를 하는 등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