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에게 학대를 받아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에 온 사회가 애도와 분노의 물결로 일렁이고 있다. 정인양을 추모하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는 정치권으로 번져갔고, 4일 여야 인사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여야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제도개선 등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아동학대 형량 2배 상향 및 가해자 신상공개(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동학대 신고인에게 사후조치 상황 통보 및 추가 의견제시 허용(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피해아동과 가해자 격리 조사를 통한 안전조치 강화(국민의힘 청년당 청년의힘) 등의 내용을 발표하면서다.
하지만 여야가 내놓은 해법을 보면서 여전히 미덥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국회는 늘 대형이슈 발생 시 대책 마련을 위한 '반짝 입법'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그리곤 용두사미에 그치는 일이 많았다. 지난해 6월, 9세 어린이가 여행가방에 감금된 후 숨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정치권이 앞다퉈 대책 입법을 내놨다. 하지만 가해자의 취업제한 범위를 확대하거나 아동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등 일부 성과만 이뤘을 뿐 더 근본적 대책은 빠졌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피해아동 발견 시 즉각 가해자와 분리·보호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한 필수적인 법적 장치는 마련하지 못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쪽 입법 대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인이 사건을 보면서 지난해 9월 아동학대 관련 취재를 위해 전화 인터뷰를 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의 말들이 다시 떠오른다. 국회의원을 지낸 표 소장은 "국회에서는 각 당의 당론이나 정치적 의미가 담긴 법안 위주로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예산이 많이 들고 논쟁이 커질 수 있는 아동학대 관련 법안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며 국회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정말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아동학대 관련 법안은 약 110건에 이른다. 이 중 90여건의 법안이 논의테이블에 오르지 못하고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258개 발의됐지만 166개 법안이 심사시한을 넘겨 자동폐기됐다.
정인양에게 미안한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여야가 진심으로 모든 아이들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일하길 기대해 본다.
ming@fnnews.com 전민경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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