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모테기 외무상 "모든 선택지 염두에 두고 대처"
"ICJ제소 선택지 중 하나"...한국 불응시 재판 성립 불가
위안부 문제 국제적 이목 집중...日 외교적 자충수 소지
韓, 응할 경우, 독도, 강제징용 제소 길 터줄 우려
한일 외교적 해결 모색 가능성 주목
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심에서 승소했다. 사지능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세워져 있는 고 배춘희 할머니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흉상. 뉴뉴스1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에 반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소송 자체는 성립되지 않는다. 일본으로서는 제소 자체 만으로도 한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고조시킬 수 있으나, 동시에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다시 주목받게 하는 자충수를 두게 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이 재판에 응할 경우, 독도 문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역시 줄줄이 ICJ행으로 가는 길을 터주게 될 소지가 있다. 양쪽 모두 ICJ행은 좋은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10일 아사히신문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는 유력한 선택지"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의 입장이 어렵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8일(현지시간)브라질을 방문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로이터 뉴스1
일본 정부는 어느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나라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을 들어, 한국에서 재판이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들고 있다. 반면 한국 재판부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 피해는 일본 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최상위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주권면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판결을 내렸다.
브라질을 방문 중인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전화 회담을 한 뒤 일본 기자들과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모든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는 "국제법상이나 2국 간 관계로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비정상'사태가 발생했다. 그간 상식으로 말하면 생각할 수 없는 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ICJ제소를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나, 선택지 중의 하나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가 원고 측의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 압류 추진 상황 등 향후 소송 추이와 한국 정부 대응을 보면서 ICJ 제소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요미우리신문은 ICJ에서 다툴 경우 주권면제를 인정받더라도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론'도 일본 정부 내에 있다고 전했다.
ICJ는 어느 일방이 제소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재판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ICJ의 강제관할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재판에 응할 의무가 없다.
일본은 지난 1958년 이미 강제관할권을 수락했으나, 한국은 1991년 ICJ 가입 당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이 국제 법정을 활용한 분쟁화 시도에 나설 가능성 등을 경계해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도 ICJ 강제 관할권을 받아들이지 않은 한국 정부가 일본 측이 제소해도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 모테기 외무상과의 통화에서 일본 측에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반응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남관표 주일대사도 일본 정부에 "우리(한국 정부)로서는 이번 판결이 한·일 양국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한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혀,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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