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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지 못하니 대목도 없다" 설 앞둔 전통시장의 그늘

[코로나 직격탄 재래시장 2제]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에 설 대목 재래시장 '휘청'
제사상 간소화되면서 선물세트보단 '낱개' 대세

"모이지 못하니 대목도 없다" 설 앞둔 전통시장의 그늘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이 '5인 이상 모임 금지' 등의 영향으로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윤홍집 기자

설 대목을 앞두고 재래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조치로 '5인 이상 모임 금지'가 설 연휴까지 유지되면서 명절 상차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설을 하루 앞둔 10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상인들은 모처럼 맞은 명절 대목에도 웃지 못했다. 거주지가 다를 경우 직계가족도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면서 명절 상차림까지 간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는 시민들의 지갑을 굳게 닫게 만들었다. 상인들은 예년보다 물건을 적게 들여놓으며 적자를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제사 줄고 지갑 닫힌 설 연휴…대목이 사라져
영천시장에서 23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장모씨(63)는 "매년 설이면 노인정이나 행사장에서 대량 주문하는 떡이 있었는데 올해는 완전히 끊겼다"며 "명절이다 보니 한 접시씩 떡을 사가는 손님이 있기야 하지만 예년에 감소한 게 사실이고, 주문이 적어서 떡도 3분의 1만 생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은 육류, 생선, 과일 등 다른 업종도 유사했다. 이들 상점에는 선물용 과일박스와 제수용 생선이 빼곡히 진열됐지만 상인들의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과일은 박스 상품보단 낱개 판매가 대세였고, 도미같이 값비싼 생선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평일보다 매출이 높은 곳이 많았으나 1년 중 최대 대목인 것을 고려하면 부진한 상황이었다.

황태포와 유과 등 명절음식을 팔고 있던 건어물 가게 최모씨(69)는 "사람이 모이질 못하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 많은 거 같다"면서 "설 전에는 5인 이상 모임이 풀리기를 바랬는데 결국 풀리지 않더라"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30여 년간 과일가게를 해온 나모씨(55)는 "과일은 신선도가 중요해서 팔지 못하면 전부 버려야 한다"며 "매일 남편에게 물건을 적게 주문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한다. 올해 설도 '개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모이지 못하니 대목도 없다" 설 앞둔 전통시장의 그늘
10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은 설을 앞두고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으나 한복 등 업종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사진=윤홍집 기자

■한복집은 텅 비었는데…전통시장 업종별 '온도차'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은 업종별로 매출 격차가 심해 보였다. 광장시장의 유명 먹거리인 빈대떡과 마약김밥, 육회집 등은 이른 시각부터 분주했다. 명절 상차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다 보니 '5인 이상 모임 금지'의 여파도 피해간 것이다. 이번 설은 귀성객이 줄고 서울에 머무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매출이 증가할 거 같다는 말도 나왔다.

한 유명 빈대떡집 직원인 이모씨(43)는 "주문이 너무 밀려서 홀 손님을 받지 않고 있다"며 "매년 명절에는 이렇게 바쁜데 올해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절과 관련된 업종의 상황은 달랐다. 한복이나 제사용품 관련 상인들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방문객으로 활기를 띠는 시장 분위기와 온도 차가 심해서 마치 다른 시장인 것처럼 느껴졌다.

광장시장에서 30년 동안 한복집을 운영한 이모씨(57)는 "결혼식과 출산 등이 줄면서 한복 업계는 침체기를 맞은 지 오래됐는데 코로나19로 결정타를 맞았다"며 "맞춤한복과 설빔은 옛날 이야기가 돼서 명절에도 하루 한벌도 팔기 어려운 처지"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대출을 끌어 모아도 임대료를 못내서 보증금이 다 까였다. 너무나도 가혹한 명절"이라고 덧붙였다.

홍삼을 판매하는 50대 김모씨는 "모두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홍삼 세트를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경제가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