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감염 우려에 여유롭고 한가한 쇼핑거리
- 중국 중앙·지방정부도 적극적인 소비활성화 대신 이동 자제 권고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제(중국의 설, 11~17일)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베이징 왕푸징 거리. 비교적 한산한 거리에서 안전 요원이 지나가는 쇼핑객을 쳐다보고 있다. 사진=정지우 특파원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 최대의 명절 춘제(중국의 설, 11~17일)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한국 명동과 비슷한 베이징 왕푸징은 비교적 한산했다. 코로나19 이전 주요 명절 때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는 거리지만, 올해는 여유롭고 한가로움 마저 묻어 나왔다.
왕푸징은 베이징의 대표적 쇼핑거리다. 중앙대로를 사이에 두고 명품부터 기념품을 파는 상점까지 길게 늘어선 쇼핑몰들은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올 겨울 중국 본토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재확산된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하듯, 이날 거리 풍경은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기 힘들었다.
관광객들의 손에는 쇼핑백 보다는 카메라나 음료수를 들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왕푸징 거리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여유롭게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도 보였다.
이런 수의 관광객도 그나마 최근 들어 급감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본토에선 이날까지 이틀째 본토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핵산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도 기침, 인후통 등 증상이 없으면 중국은 확진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불과 한 달 전에는 허베이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에서 감염자가 폭증해 도시 봉쇄에 들어간 지역이 10여곳에 이르렀으며 허베이성 스자좡은 베이징으로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지역 빗장을 굳게 걸어 감갔다.
실제 왕푸징 거리를 진입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중국은 상점이 밀집한 거리에 들어가려면 통상 입구에서 건강앱을 열고 코로나19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왕푸징 거리는 건강앱 검사도 체온 측정도 하지 않았다. 거리 입구에 대기 중인 안전요원들은 무료한 듯 하품을 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음식점이나 찻집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 포털 바이두에서 검색한 유명 만두집은 춘제 대목인데도 영업을 중단한 채 문이 닫혀 있었다. 주변 다른 식당 역시 간간히 손님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10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왕풍징 거리에서 쇼핑객이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 최대의 명절(11~17일)를 본격 시작됐지만 번화가는 비교적 한산했다. 사진=정지우 특파원
지난해의 경우 중국 중앙·지방정부는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해 명절 즈음 소비쿠폰 발행, 할인행사 등 각종 소비부양 정책을 쏟아냈다. 중국은 소비의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 국가다. 2019년 기준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57.8%를 차지할 정도도 핵심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 같은 소비활성화 정책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오히려 고향을 방문하지 않고 현지 체류지역에 머무르는 주민에겐 휴대폰 데이터나 현금 등을 지원하며 이동 자체를 권고하고 있다. 관영 매체의 소비 띄우기 보도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관광을 독려하는 정책이나 홍보 기사도 없다.
이는 내달 초 시작되는 중국 최대의 정치 이벤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도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회의 첫 번째 성공 키워드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이는 전국 지도부의 코로나19 감염 방지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양회를 1978년 중국 국가 개방이후 처음으로 5월로 연기했었다. 올해는 이처럼 양회를 미루는 대신 그 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한 철저한 방역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경제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회복세에 들어간 것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대부분 국가는 아직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중국 경제 성장률은 1·4분기 -6.8%에서 2분기 3·2%로 플러스 전환한 뒤 3·4분기 4.9%를 거쳐 4·4분기 6.5%까지 ‘V자형’ 반등에 유일하게 안착했다. 이런 성과의 배경은 소비활성화를 비롯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평가됐다.
하지만 지나친 인위적 돈 풀기는 자산버블, 부채비율 급증, 빈부격차 심화, 집값 상승 등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는 만큼 경제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역RP(환매조건부채권·레포)로 금융권에 1000억 위안의 유동성 공급과 동시에 1800억 위안 어치의 만기 도래 물량을 거둬들여 결과적으로 800억 위안 규모의 유동성을 회수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등 주요국이 코로나19 경제 충격과 싸우고자 새 경기 부양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중국은 작년 펼친 일시적 부양책을 미세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춘제를 앞두고 중국이 시장 기대를 낮추기 위한 경고음을 낸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제(중국의 설, 11~17일)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베이징 왕푸징 골목. 코로나19 이전 관광객과 쇼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 것과 달리 비교적 한산했다. 사진=정지우 특파원
다만 고가의 금제품과 명주 마오타이 등을 찾는 일부 소비행태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춘제를 맞아 전국 도시의 보석 판매점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금제품, 마이타이주를 사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리면서 물량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보복성 소비보다는 향후 자산 확대를 기대하는 투자적 성격이 더 강하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최고 지도부는 같은 날 대국민 단배식(단체 새해 인사)을 통해 코로나19 방역 승리를 자랑했다. 시 주석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고 가장 먼저 경제성장을 실현하는 위대한 성과를 거뒀다”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강력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가진다는 점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11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하루 동안 중국 본토에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는 2명으로 집계됐다. 지역 감염은 없었고 푸젠성 1명, 광둥성 1명 등 모두 해외 유입 사례다.
무증상 감염자는 16명이 새로 발견됐다. 15명이 해외에서 들어왔고 1명은 지린성에서 확인됐다.
다만 중국은 핵산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도 환자에게 기침, 인후통 등 코로나19 증상이 없으면 확진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중국 본토 외 중화권에선 누적 1만169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홍콩 1만710명(189명), 마카오 48명, 대만 935명(9명) 등이라고 국가위건위는 덧붙였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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