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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文정부 '악마의 변호인'은 어딨나

쓴소리 전문가들 밀어내고
소주성 고수, 양극화 커져
일방적 검찰 힘빼기도 뒤탈

[구본영 칼럼] 文정부 '악마의 변호인'은 어딨나
임기 말 문재인정부의 국정 마이웨이 기조가 뚜렷하다. 온갖 불협화음에도 답이 정해진 길인 양 내닫고 있다. 최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파동이 이를 보여주는 단면도다. 여권이 검찰개혁(이라고 쓰지만, 야권은 검찰장악이라고 읽는다)을 내부 이견조차 배제한 채 '무소의 뿔'처럼 밀어붙일 징후라는 점에서다.

문제는 국정 전 분야에서 일로매진한 결과가 신통찮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각종 명목의 현금 수당을 늘리면서 줄기차게 소득주도성장론을 실험했다. 하지만 마차가 말을 끄는 식의 '족보 없는' 정책을 고집한 대가는 자못 심각하다.

지난달 말 통계청의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자. 재정을 풀면 가계소득이 늘어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가 성장하리라는 기대는 신기루였음이 드러났다. 소득 하위 1분위(-13.2%)와 2분위(-5.6%) 가구의 근로소득은 현저히 감소했다. 반면 코로나19 여파에도 최상위 20%를 점하는 5분위의 근로소득은 1.8% 늘었다. 결국 취약계층을 돕는다면서 돈을 풀었지만 소득 격차만 되레 벌렸다는 뜻이다. 더욱이 평균소비성향(69.6%)도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1.7%포인트 떨어졌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으로 이전소득이 늘어난 상위 소득층도 이를 함께 늘어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는 데 충당하면서 경기 진작 효과도 없어진 셈이다.

가톨릭 교단에선 일부러 쓴소리를 전담하는 '악마의 변호인'을 둔다. 그릇된 집단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사퇴한 이후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이 역할을 하는 계보는 사실상 끊어졌다. 당·정·청 내부에 직언을 하는 이가 없으니, 정책 헛발질도 멈추지 못하는 형국이다.

임기 말 정부의 제동장치가 또 고장 난 건가. 사표를 냈던 신현수 민정수석이 엉거주춤 복귀한 이후 여권의 검찰 힘빼기는 더욱 탄력이 붙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느라 폭주했던 거대 여당이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할 때를 돌아보자. 당시 한 범여권 인사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추 장관의 역성을 들었다. 그러나 무리수는 통하지 않았다. 여론에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권력을 겨냥한 수사를 없애려는 의도로 비치면서다.

이제 여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까지 속전속결로 마무리할 기세다. 이번주 법안을 발의해 6월까지 처리할 방침이다. 검찰과 야당의 반발쯤은 압도적 의석과 여론몰이로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권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원전 조기폐쇄 사건 등을 임기 내엔 덮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국정은 상식과 균형을 잃으면 언젠가 동티가 나게 된다.
정권 재창출 후에도 전 정권 청산이 이뤄졌던 정치사를 돌아보라.

일방적 권력기관 개편이 뒤탈 없이 가능할까. 용케 성공한들 제 몸의 종기는 짜내지 않고 방치해 큰 병을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현 정권은 이미 전전 정부의 적폐까지 샅샅이 찾아내 응징하는 전례를 남겼다. 그런 맥락에서 현 여권이 몇 안되는 '악마의 대변인'들을 내치고 586그룹 중심의 친위세력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훗날 큰 화근을 키우는 격일지도 모를 일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