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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패권 흔들려는 디지털위안화, 성공할까 [글로벌 리포트]

디지털위안화 '역외결제' 공식 천명
달러화 결제시스템 통하지 않아도 돼
美 견제하며 기축통화 양분 노려

달러패권 흔들려는 디지털위안화, 성공할까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중국이 글로벌 통화 패권국에 오르기 위해 디지털위안화 확장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일 개막한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디지털위안화가 중요 의제로 올랐다. 이런 시점에 공교롭게도 민간 핀테크 사업을 주도해왔던 중국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 금융당국에 불려가 공개 질책을 받은 뒤 5개월째 두문불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포럼에서 중국 정부의 금융규제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부터다. 이후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 기업공개(IPO)가 불과 이틀 전에 중단됐다.이후로도 반독점 규제 등을 통한 중국 정부의 마윈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다. 표면적으론 '마윈 길들이기'다. 아무리 마윈이라도 왕치산 부주석, 이강 인민은행장 등 고위급이 있는 자리에서 정부에 날을 세운 것은 이례적으로 해석됐다. 중국에서 정부를 비판한 뒤 온전히 자리를 보전하긴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중국 정부의 속내는 마윈 괘씸죄가 아니라 디지털위안화를 위한 기존 핀테크 결제수단의 영향력 축소라는 해석이 나왔다.

현금 사용이 이미 사라진 중국에선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위챗의 위챗페이가 핀테크 결제를 양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파이를 일정부분 줄이지 않고는 디지털위안화의 성공은 사실상 어렵다는 해석이 있다.

■양회 의제로 부상한 디지털위안화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에 인민은행 발행 디지털위안화가 의제로 오르면서 중국 정부의 디지털화폐에 대한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양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가 향후 정치·경제 정책을 논의, 결정하는 자리다. 양회에서 승인되는 정책은 추진에 상당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디지털위안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가 확인되는 셈이다.

중국 정부의 디지틸화폐 정책이 점차 완성되고 있다. 디지털화폐는 법적 현금통화(MO)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법정디지털통화(CBDC)나 디지털화폐전자결제(DCEP)로 불린다.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디지털위안화를 뜻한다.

중국에선 실물 화폐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대신 핀테크 결제수단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보편적으로 쓰인다. 상점이든 노점이든 거래를 하려면 휴대폰을 열고 이들 결제수단을 꺼내야 한다.

중국이 디지털화폐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14년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연구팀을 설치해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2년 뒤엔 블록체인과 디지털화폐를 대상으로 상업은행이 참여하는 테스트를 벌였고, 2017년에 디지털화폐연구소를 설립했다. 지난해 4월에는 선전, 쑤저우, 청두, 슝안특구, 베이징동계올림픽 현장 등에서 비공개 파일럿테스트를 하며 시장 활용도를 점검했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대규모 공개시험도 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설) 때는 베이징 시민 5만명에게 200위안(약 3만4000원)씩 모두 1000만(약 17억원)에게 디지털 훙바오(붉은 봉투)를 나눠줘 디지털위안화를 사용토록 했고, 청두에서도 20만3060명에게 4000만위안(약 70억원)을 공급하는 시험을 벌였다. ▶관련기사 17면

■익명성은 불투명, 이자 없어

디지털화폐라고 하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떠오르지만 실제는 차이가 난다.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이므로 유통 중인 현금과 같은 법적 효력을 지닌다. 따라서 강제 통용력을 바탕으로 중국 내 모든 거래의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고, 경제주체들은 지급결제를 거부할 수 없다. 또 자금세탁, 반부패, 반테러 등 관련 법률도 지켜야 하며 거액 자금을 거래할 때는 중앙은행 보고의무도 지니는 '공공재'다.

디지털위안화는 발행은 중앙은행이 전담하지만 유통과 회수, 입출금 등 개인서비스는 시중의 상업은행이 담당하게 된다. 중앙은행→상업은행→개인·법인 등 2단계 운영방식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현금처럼 중앙은행이 공급과 유통량 전체를 조절하고 상업은행은 같은 금액을 중앙은행에 준비금으로 예치한 후 디지털화폐를 시중에 공급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MO 총량은 그대로다.

말 그대로 디지털 전환 화폐라서 금융기관이나 고객 등이 거래비용을 낼 필요는 없다. 은행 역시 개인고객에게 수취료를 받지 않는다. 반면 개인이 아무리 오랫동안 디지털위안화를 전자지갑에 보유해도 이자는 발생하지 않는다.

디지털위안화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바로 상대방과 거래를 할 수 있다. 두 대의 휴대폰을 서로 접촉시키는 근거리무선통신(NFC) 방식을 사용하며,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통한 지불도 가능하다.

현금과 차이점은 익명성 여부다. 중국 정부는 원칙적으론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범죄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될 경우 자금흐름을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바꿔 말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예금 등의 M1(협의통화)이나 정기예금 등을 포함한 M2(광의통화)까지 확대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는 지급결제의 효율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기존 금융시스템의 혼란과 자원낭비 소지가 있는 것으로 인민은행은 평가하고 있다. 은행에 예치된 화폐까지 확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기축통화 양분의 꿈

디지털위안화의 등장은 중국에서 거래수단을 완전히 장악한 알리페이·위챗페이의 '파이'를 빼앗기 위한 것이라는 게 통상적 견해다. 이들이 확보해온 방대한 소비자 빅데이터 확보 차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민은행은 범국적 신용정보 시스템에 이들 기업의 소비자 정보를 활용하려고 했지만 거부당한 적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윈 때리기 이면에는 데이터 제공을 의무화하거나 정보를 공유토록 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금융 전문가들은 기존 결제수단과 공존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향력이 일정부분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디지털위안화를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에서도 사용 가능하므로 완전한 대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보다 미·중 경쟁 속에서 통화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의 야심일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물리적 이동제한이 있는 지폐와 달리 대외적으로도 쉽게 유통이 가능하므로 위안화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고, 이는 곧 달러와 더불어 기축통화(국제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를 양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의미다.

예컨대 시진핑 주석의 핵심정책인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면 달러화 결제시스템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 동남아시아 등 중국에 경제를 의존하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는 상대적으로 무역거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의 디지털위안화 사용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 디지털화폐연구소는 지난달 23일 '중앙은행 다자 디지털 통화 가교'에 가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디지털 위안화의 역외결제를 공식 천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뒷받침하는 분산 원장 기술을 활용, 외환을 실시간으로 역외거래하는 결제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국제결제에서 달러화 비중은 약 40%이지만 위안화는 2.42%에 불과하다.

2018년 이후 미·중 무역마찰이 격화되면서 미국에 의한 중국 금융기관의 국제결제망 참여제한 등 금융제재 가능성이 거론되는 점을 디지털위안화의 추진 배경으로 꼽는 의견도 있다. 즉 홍콩 문제 때문에 미국이 주요 국제결제망인 뉴욕청산소은행간지급시스템(CHIPS)이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중국 금융기관의 접근을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이후 이를 이용하지 않는 자체적인 결제수단으로 디지털위안화 개발에 나섰다는 진단이다.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를 노리고 SWIFT와 합작사업에 들어갔다는 관영매체의 보도도 있다.

이강 인민은행 총재 등 중국 지도부는 "디지털위안화 발행일정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고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다만 지난해 이후 디지털위안화 시범테스트 사업이 꾸준히 확대되고, 내년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를 앞둔 시진핑 주석의 업적 쌓기 등을 감안하면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보다 향후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