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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칼럼] 공공주도 개발의 덫

부동산 3대 특권 독점한
공공개발 임계점에 도달
지자체에 권한분산이 답

[노주석 칼럼] 공공주도 개발의 덫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의 핵심은 일부 일탈 직원의 땅 투기가 아니다. 공룡조직 LH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 구조가 문제이다. 본질적으로는 LH가 주도하는 공공주도 개발의 모순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터진 것이다.

LH는 지난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탄생한 공기업이다. 직원 9500여명에 자산 규모만 184조원에 이른다. 합병 당시 정부는 LH에 3대 부동산 특권을 몰아줬다. 땅을 강제로 사들이는 토지수용권, 신도시 등 택지 개발을 좌지우지하는 독점개발권, 논밭이나 그린벨트 등 땅의 용도를 바꿀 수 있는 용도변경권이 그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떤 기관에도 없는 싹쓸이 특권을 쥐여주면서, 집 없는 서민을 위해 싸고 좋은 집을 지어 공급해달라고 주문했다. 무뇌아적 발상이다.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대한민국 부동산계의 '슈퍼 울트라 갑'으로 군림했다.

바야흐로 'LH 불신지옥'이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LH를 빗댄 각종 패러디가 나돌고 있다. 'LH'와 한글 '내'의 글자꼴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조롱이다. 'LH로남불'(LH가 하면 노후준비 남이 하면 불법), 'LH땅 LH산'(LH 땅은 LH가 산다), 'LH부자들(내부정보를 활용한 부자들)' 같은 식이다.

시중에선 LH가 주도하는 공공개발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했지만, LH를 고쳐서 3기 신도시와 2·4 공급대책을 계속 밀고 나갈 요량이다. 정치권은 본질과 무관한 특검 타령이다. 국민들이 LH 주도 부동산정책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는데도 딴짓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의가 수용된 식물장관이다. LH 사장도 공석이다. 4·7 보궐선거 이후 변 장관이 물러나게 되면 사실상 '변창흠표 공급대책'으로 불린 2·4 대책은 공중에 뜰 판이다. 어차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나.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주무 장관과 사장의 리더십 공백 앞에서 갈대처럼 나부끼고 있다.

기본전제가 사라진 논리구조나 굄돌이 빠진 건조물은 붕괴되기 마련이다. 공공이 주도하는 주택 공급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되짚어봐야 할 시간이다. 2·4 대책을 뒷받침하는 각종 법안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지만 요령부득이다. 'LH를 위한, LH에 의한, LH의' 법에 무얼 채우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개별적 개발사업은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나 지방 공기업에 넘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LH가 독점하고 있는 개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할 것"을 권한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아예 3기 신도시 지정 취소를 주장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주택 분양과 임대는 민간에 맡기고, 공공은 임대주택만 담당"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래저래 공공주도 개발은 시장자본주의의 약이 아니라 독일 가능성이 높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