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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업소 표적… 증오범죄 명백한데, 경찰은 "성 중독자"

애틀랜타 총격범 범행동기 논란
희생자 8명 중 한국계 4명 포함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인데도
관할 보안국, 단순 범죄 치부
한인사회 "변명 그만 멈추고
인종차별 문제로 다뤄야" 규탄
현지 시장도 나서 경찰 비판

아시안 업소 표적… 증오범죄 명백한데, 경찰은 "성 중독자"
21살 백인의 총기난사로 8명이 사망한 미국 애틀랜타에 추모행렬이 17일(현지시간) 이어졌다. 전날 총격에 따른 사망자중 4명은 한국계 여성이다. 이들 연령대는 60~70대 3명, 50대 1명으로 전해졌다. 이날 한 동양인 청년이 조지아주 애크워스의 사건 현장에서 "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다. AP뉴시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 마사지·스파 업소 3곳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두고서 현지 경찰과 한인사회의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인사회는 '인종 혐오'로 이번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경찰은 용의자의 '성 중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총격으로 사망한 한인 여성 4명 가운에 2명이 70대 노인이며, 다른 2명은 각각 60대와 50대로 나타났다.

애틀랜타 한인 매체 애틀랜타K가 17일 피해자 인적 사항을 공개하면서 '아로마 테라피 스파' 종업원의 말을 인용해 "사망한 여성은 64세 유모씨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며 "당시 가게에는 3명의 한인 여성 종업원이 있었지만 유씨만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또 '골드 마사지 스파'의 사망자는 71세 박모씨와 53세 박모씨, 그리고 본명이 공개되지 않은 70대 여성이라고 전했다.

당시 3곳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8명이 숨졌으며 이중 6명은 한국계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사망한 한인 4명 모두 애틀랜타의 최대 한인 타운인 툴루스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두 명의 박모씨는 해당 업소에서 2년 가량 일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사건 장소인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서 4명이 사망했으며 경찰 공개 사망자 명단을 볼 때 2명은 백인, 2명은 중국계로 추정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관할하는 체로키 카운티 보안국은 이번 사건이 용의자인 로버트 에런 롱의 성 중독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인종 혐오로 일으킨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한인사회는 경찰의 이같은 추측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 한국계 의원들은 17일 일제히 전날 발생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규탄하며 해당 사건을 인종차별 증오 범죄로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주) 하원의원은 이날 의회 발언을 통해 "우리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을 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같은날 미셸 박 스틸(공화·캘리포니아주) 의원도 "이번 사건은 비극적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는 중단돼야 한다"며 "희생자들과 그 가족, 아시아·태평양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앤디 김(민주·뉴저지주) 의원은 "체계적인 인종차별주의는 깊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희생자 가운데 한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 김(공화·캘리포니아주) 의원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에 비통하다.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와 공격 행위를 목도하고 있는 이때 저는 아시아·태평양계 공동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회도 애틀랜타 총격사건이 명백한 증오범죄라며 용의자의 범행 동기를 성 중독으로 보는 것은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LA한인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용의자는 약 1시간에 걸쳐 아시안이 운영하는 3곳의 업소를 표적으로 총격을 가했다"며 "이는 코로나19 사태 기간 미국 전 지역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임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한인회는 이어 "모든 증오범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붕괴 범죄이고, 이번 사건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애틀랜타 해당 지역 경찰,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 관계기관이 증오 범죄로 수사해줄 것을 촉구했다.

LA한인회는 "증오범죄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들이 (경찰 발표를 인용해) 용의자가 성 중독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 증오범죄 가능성을 애써 감추는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LA 한인회는 애틀랜타 한인회와 공조해 총격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키샤 랜스 보텀스 애틀랜타 시장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마치 희생자에 탓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텀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범행이 발생한 업소들은 현재까지로는 합법적으로 운영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