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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규제기준 불명확·절차 복잡"...금소법에 직원도 고객도 지쳤다

금소법 시행 첫날, 금융사 영업점 가보니 
가이드라인 애매, 일부 상품 판매 중단 
금소법 전반적 이해 어려움 
설명·녹취 등 절차 복잡, 장시간 소요
"업무 과부하...실적 하락 불보듯" 

[현장르포] "규제기준 불명확·절차 복잡"...금소법에 직원도 고객도 지쳤다
제한적으로 적용됐던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25일 본격 시행됐다. 이날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직원이 고객에게 금융상품 판매 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이전에 비해 (영업점) 분위기가 안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 세부적인 사안들에 대한 금소법의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하고, 금소법의 범위도 광범위해 전반적인 이해도 쉽지 않다. 더욱이 상품 판매 절차도 복잡해져 고객, 직원 모두의 불편함이 커졌다."

제한적으로 적용됐던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25일 본격 시행됐다. 금융사는 고객 투자성향을 미리 체크해 맞는 상품만 팔고, 투자설명서도 꼭 제공해야 한다. 상품을 잘 모르는 직원이 팔아도 문제가 된다. 금융사는 이를 위반하면 징벌적 과징금이나 과태료를 무는 반면 소비자는 위법계약해지권, 청약철회권 등 강력한 보호장치를 가지게 됐다. 하지만 규제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거나 복잡해진 절차 등으로 일선 영업점에선 금소법 시행과 관련한 우려와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애매한 규제, 비대면상품 판매 중단
이날 기자가 방문한 A은행 영업점에선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특히 비대면, 인공지능(AI) 기반 상품은 일단 매대에서 내렸다. 업계별 세부 업무지침 등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판매했다가 소위 '시범케이스'로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A은행 영업점 직원은 "법 시행과 관련한 정부의 총체적 준비 부실이 드러난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융사들은 상품 판매 등이 위축되고, 판매 계획을 재수립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금소법이 너무 광범위해 의문을 명확히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A은행 영업점 직원은 "이젠 금융업도 비대면이 답인 것 같다. 직원이 컴퓨터가 아닌 이상 금소법 전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금소법을 시작으로 금융의 디지털화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영업점도 줄고 직원들도 내몰리게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복잡해진 절차, "녹취만 25분"
한층 복잡해진 상품 판매절차는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이날 B은행 영업점을 특정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방문한 한 고객은 이전과 달라진 직원의 대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직원은 우선 고객 앞에 스크립트와 녹음기를 내놨다. 상품 설명이 자세하게 담긴 스크립트는 분량이 상당했고, 직원과 고객이 번갈아 읽으면서 녹취를 했다. 해당 고객은 "녹취하는 것에만 약 25분이 걸린 것 같다"며 "결국 이전엔 20분이면 할 수 있었던 모든 절차가 이젠 최대 1시간이 걸릴 수도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은 B은행 영업점에 일시상환 대출을 연장하기 위해 내방했다. 그런데 이번 금소법 시행으로 상품설명서를 작성할 때 원리금 상환액을 고객이 자필 기재하게 된 것에 대해 "아직 대출도 못 갚는데 월 분할상환 금액을 어떻게 적으라고 하는 거냐"며 불편해하기도 했다. B은행 영업점의 한 직원은 "앞으로 상품을 판매할 때 관련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크게 늘어나면서 직원들 입장에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것 같고, 전반적으로 영업 실적 하락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2금융권도 '혼선'
금소법 시행과 관련해 보험사 일선 지점에서도 혼선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기존에 변액연금보험을 판매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한 보험사 지점 관계자는 "고객이 적합성의 원칙 진단을 거부해도 반드시 진단을 받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또 기존에 진단을 받은 고객들도 상품을 새로 가입하려면 신규로 진단을 다시 받아야 하고, 절차도 이전보다 복잡해져서 힘든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부적합 고객의 경우 부적합확인서를 청구하고 가입이 가능했지만 금소법 시행으로 불가능해졌다. 또 상품성향이 보장형인 고객도 변액종신 외에 변액연금, 변액적립 상품 가입이 가능했지만 이제 보장형은 변액종신, 연금형은 변액연금, 저축형은 변액적립만 가능하다. 특히 금소법 제26조 제2항에 따라 금융상품 판매 대리나 중개업무를 수행할 때 중개업자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증표를 제시해야 한다.


카드사들도 주로 비대면 채널을 통해 신용·체크카드를 개설하는 만큼 해당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전언이다. 저축은행들도 금소법 적용 범위 등에 난색을 표했다. 한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금융상품 가입과 관련한 내용을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능력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금소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할 수 있다"며 "판매자는 금융 소비자에 비해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아쉽다"고 했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김성환 정명진 윤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