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무게 때문에 부양 힘들어
인양 실패 대비해 하적 준비도
운행 차질로 하루 손실 1500만弗
수에즈 운하 정상화 기대감에
국제유가 하락… 亞증시 들썩
국제 선박 추적시스템 플릿몬(FleetMon)이 29일(현지시간) 포착한 '에버기븐' 호가 수에즈 운하 내부에서 뱃머리 방향을 조정한 모습. 로이터뉴스1
닫혔던 선미 부분이 열리면서 뱃길이 생겼다. 에버기븐호는 좌초됐던 제방에서 벗어나 80% 정도 정상 운항 방향으로 뱃머리를 트는 데 성공했다. 이날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인양작업 끝에 부분적으로 다시 뜬 모습. 로이터뉴스1
이집트 수에즈 운하 남단에서 좌초돼 세계 해운 업계를 마비시켰던 '에버기븐' 호가 성공적으로 다시 떠올랐다. 조만간 수에즈 운하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속에서 유가는 곧바로 하락했다.
29일(현지시간) AP뉴스에 따르면 좌초됐던 에버기븐호는 운하에 대각선으로 좌초됐던 제방에서 벗어나 80% 정도 정상 운항 방향으로 뱃머리를 트는 데 성공했다.
운하가 곧 다시 열린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투자시장도 들썩였다. 29일 아시아 시장에서 거래된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90센트 하락한 배럴당 63.67 달러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3 달러 하락한 59.94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 증시 역시 1~2% 상승세를 보였으며 대만 증시에 상장된 에버그린해운의 주가도 3.3% 뛰었다.
운행 재개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이날 AFP통신에 따르면 에버기븐 선주사인 일본 쇼에이기센 관계자는 29일 "항로를 가로막고 있던 뱃머리 방향을 트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일단 좌초된 배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마나 선적의 에버기븐은 대만 해운사인 에버그린이 임대해 운용해왔다.
길이만 400m에 달하는 선박을 움직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에버기븐호의 뱃머리는 운하 제방에 박혀 땅에 올라온 상태였다.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지난 28일 성명에서 "선수 부근에서 모래 2만7000㎥를 수심 18m 깊이까지 준설했다"고 전했다. 오사마 라비 SCA 청장은 이집트 국영 방송과 인터뷰에서 "키와 프로펠러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작동한다"며 "선수 아래 물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 밑에 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날 준설만으로 에버기븐호를 다시 물에 띄우기 어려운 경우 무게를 덜기 위해 배에 실린 약 1만8000개의 컨테이너를 일부를 내릴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네덜란드 보스칼리스의 구난 전문 자회사 '스마트 샐비지'의 피터 베르도스키 최고경영자(CEO)는 29일 네덜란드 공영 라디오에 출연해 에버기븐의 뱃머리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은 매우 기쁘지만 선박을 완전히 인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만약 인양 작업이 실패한다면 컨테이너들을 모두 하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배가 자력주행하기 위해 물에 완전히 떠야 한다며 컨테이너 무게때문에 부양이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배의 상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외신들은 에버기븐이 완전히 물위로 떠올라 뱃머리 방향으로 돌렸으며 운하 중앙의 그레이터 비터 호수로 이동하기 위해 엔진까지 재가동했다고 보도했다. 당국 관계자들이 선박의 이동을 위해 선박 상태를 점검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2만TEU(1TEU는 컨테이너 1개분 화물)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는 지난 23일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로 가던 도중 좌초됐다. 선박은 뱃머리가 한쪽 제방에 박히면서 선미가 반대쪽 제방에 걸쳐 운하를 가로막았다. 에버그린측은 갑작스러운 강풍에 따른 항로 이탈로 선체가 운하 바닥과 충돌했다고 추정했다.
에버기븐이 뱃길을 막으면서 28일 기준으로 369척의 선박들이 수에즈 운하 양쪽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의 교역량은 전 세계 무역 규모의 12%에 달한다. 지난해 1만9000척, 하루 평균 51.5척의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 약 1주일의 운행 차질로 인해 일일 최대 1500만달러(약 169억원)의 손실이 보고됐다.
이러다보니 세계 최대 규모인 덴마크 선사 머스크는 25일 성명을 내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경유를 포함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아공의 희망봉을 경유하면 노선 거리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약 9650㎞ 늘어난다. 머스크는 운하가 막힌 이후 29일까지 최소 15척의 선박을 기존 수에즈 항로에서 희망봉 항로로 변경했다. 하지만 에버기븐이 조만간 재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더 이상 희망봉 항로로 뱃머리를 돌리는 선박들은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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